더 건강한 삶을 위한 공간복지[기고/정혜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5일 03시 00분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정혜주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공간복지는 시민이 일상을 보내는 공간 속에 복지 공간을 마련하는 걸 의미한다. 예전에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주도했던 노후 임대주택 개선 사업, 작은 도서관 리모델링 공사, 반지하 공간의 생활 사회간접자본(SOC) 전환 등이 좋은 사례다.

SH공사는 공간닥터를 채용해 임대아파트 등에 대한 공간 진단도 진행했다. 또 이를 토대로 주민들과 함께 유휴공간을 삶의 질 향상, 공동체 회복 등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공간복지가 왜 필요할까? 일차적으로는 공간의 형태와 넓이, 채광, 습도, 온도 등 물리적 조건이 시민의 삶과 정신적·신체적 건강 및 안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인 가구의 최저 주거 면적은 2004년 이후 20년간 14㎡(약 4.2평)에 머물고 있다. 이를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현실 속 빈곤 청년은 그조차 못 미치는 원룸과 고시원에 살고 있어 ‘집옥’이라고까지 한다.

1인당 평균 2.8평에 사는 서울의 주거 빈곤 가구 아동 중 다수는 호흡기 질환을 달고 살며 우울감, 분리 불안, 지적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미네소타 해비타트가 1989∼2014년 수행한 402가구 조사에서도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아동·청소년이 뇌수막염, 천식, 발달장애 등의 질병을 경험할 확률이 최대 25%에 달했다. 또 65∼75세에 질병을 경험할 확률이 일반 성인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최소 주거권을 충족하는 곳으로 이주한 아동의 경우 50% 이상이 학업 성취도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90%가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체 건강뿐 아니라 인생 성취도와 정신 건강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주거공간뿐 아니라 도시공간도 마찬가지다. 도시공간이 시민의 삶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 보니 고령친화도시, 아동친화도시, 여성친화도시, 건강도시 등 특정 인구집단이나 시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공간을 활용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강조하는 ‘건강도시’도 그중 하나다. 건강도시는 ‘도시의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창조·개선할 뿐 아니라 커뮤니티 자원을 확장해 시민들이 서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도시의 모든 기능을 수행하고 최대치까지 개발하는 도시’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면서 대중교통을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활동적 도시, 자연환경과 인간이 어우러지는 생태 도시, 다양한 보건의료 서비스가 수요자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통합 서비스 도시, 이웃과의 유대감과 커뮤니티 활동 참여를 촉진하는 참여 도시 등이 건강도시의 핵심적 비전이다. WHO는 이를 통해 공간복지의 비전에 구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복지를 중심으로 공간을 조성함으로써 만들어질 쾌적하고 형평에 맞는 공간들은 우리나라의 건강 수준과 건강 형평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 구체적 정책을 내놓으면서 정책의 성공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 지표에는 건강 수준과 형평성, 건강영향평가 등이 포함돼야 할 것이다.

#공간복지#주거공간#도시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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