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추락은 극성맘 탓?’… ‘교사 vs 부모’ 이슈로 끝나지 않기를[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5일 12시 00분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

공교육 멈춤의 날인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교대 학생들이 모여 촛불을 든 모습. 이한결기자 always@donga.com

얼마 전 학교 앞에서 아이가 상급생들로부터 불편한 상황을 겪는 일이 있었다. 관련해 학교에 건의하고 싶은 게 있어 교무실로 전화를 걸려다가 멈칫했다. 번뜩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새 악성 민원으로 떠들썩한데, 전화했다가 괜히 나도 극성 엄마로 찍히는 거 아닐까?’

초등학교 교사의 자살 사건으로 촉발된 교권 추락 이슈가 두 달째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악성 민원으로 괴롭힘당한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연과 더불어 ‘왕의 DNA를 가진 아이’, ‘내 아들 손이 친구 뺨에 맞았다’ 등, 기상천외(!)한 학부모 사례가 일파만파 퍼지며 일명 ‘진상맘’으로 대표되는 극성스러운 부모에 대한 비난이 쇄도했다. 이런 부모들이 학교뿐 아니라 학원, 기업, 심지어는 군대까지 민원을 넣는다는 보도가 줄이었다. 급기야 분노한 시민들이 교사 사망사건에 연루된 부모들에게 사적 응징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평상시 같았으면 당연히 건의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학교에 전화하는 게 눈치 보일 수밖에 없었다.

교육부 사무관이 자녀 담임교사에게 보냈다는 건의서. 아이가 ‘왕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 명령하듯 말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DB
교육부 사무관이 자녀 담임교사에게 보냈다는 건의서. 아이가 ‘왕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 명령하듯 말하지 말라는 내용으로 논란이 됐다. 동아일보DB


● 교권 추락 원흉이 된 부모들
작고한 교사분들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이번 사태로 뒤늦게나마 극성 부모들의 존재와 심각한 행태가 드러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최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이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응답자 2390명 중 2370명(99.2%)이 ‘교권 침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그 중 ‘학부모 악성 민원’(49%)이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했다. 일련의 사태와 이런 조사들에 힘입어,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 처분 등을 받지 않도록 하는 아동학대처벌특레법 개정안을 포함한 이른바 ‘교권 회복 4법’이 국회에 상정됐다. 오는 21일 국회 본회의에 오를 예정이다.

하지만 한 가지 짚고 가야 할 것은 교사의 99%, 49%가 교권을 침해당하거나 악성 민원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해서, 학부모의 99%, 49%가 그런 행위를 했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설문은 교사의 업무 기간을 통틀어 교권 침해 경험을 조사한 것이다. 한 학부모가 여러 학년에 걸쳐 십수 명의 교사에게 피해를 끼쳤을 수도 있다.

한데 최근 분위기를 보면 학부모 전체가 ‘진상맘, 극성맘’ 혹은 ‘잠재적 진상맘, 극성맘’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학부모는 무너진 교권의 가장 큰 원흉이 되었다. 교사들의 안타까운 사고 소식이 뜨면 누구나 ‘학부모 민원이 있었겠거니’ 하고, 경찰 수사가 진행된 것도 아닌데 사망의 주요인처럼 확정돼버렸다. 기사 댓글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아이 부모들에 대한 비난이 넘쳐난다. ‘요즘 부모’는 무슨 일이 터지면 남은 안중에도 없이 제 새끼 감싸기에만 급급하다고 비판하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지난 8월 교권회복 및 보호를 위한 학부모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과 학부모들. 김동주기자 zoo@donga.com


● 모든 부모가 ‘극성 부모’는 아니다
기자도 네 명의 아이 중 세 명을 학교에 보내고 있는 학부모다. 어느덧 부모 12년 차라 직간접적으로 접한 학부모들도 많다. 하지만 요즘 기사에 나오는 것처럼 ‘아이 수업에 방해되니 교사의 결혼식을 미루라고 주문’했다거나 ‘내 직업이 뭔지 아느냐고 호통’을 치고 ‘아이들 보는 앞에서 선생님을 폭행’하는 정도의 ‘진상 부모’는 아직까지 직접 보거나 사례를 듣지 못했다. 오히려 생각 외로 교사를 어려워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다고 느껴왔다. 일례로 1~2년 전만 해도 반마다 부모들의 ‘단체톡방’이 있었는데, 선생님 알림장 공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톡방에서 학부모들 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교무실에 전화해서 선생님께 직접 문의하면 될 것을 왜 서로 토론하는 걸까’ 의아했는데, 나중에 보니 ‘학교 선생님께 고작 이런 일로 전화를 걸어도 되나’하는 조심스러움 때문이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은 것 같은데 교사에게 대놓고 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학부모들도 많이 봤다.

물론 권위주의 시대에 비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낮아졌고, 몇 년 새 알림장 앱이나 별도 메신저 등 소통 창구가 늘면서 불만이나 궁금한 점을 교사에게 직접 전달하는 부모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다고 해서 누구나 뉴스에 나오는 극성 부모들처럼 문지방 넘듯 쉽게 과도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건 아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사망 교사 추모식에서 교사와 시민들이 줄을 서서 카네이션을 헌화하고 있다. 동아일보DB


● 비방·혐오, 문제 해결에 도움 안돼
그럼에도 극성맘이 광범위하게 퍼져있고 일반적인 양 치부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더구나 최근 부모들을 향한 일부의 비판은 건강한 비판을 넘어 과거 ‘맘충’이나 ‘노키즈존’ 논란 때 같은 혐오를 방불케 한다. 교권 관련 기사 댓글만 봐도 부모란 존재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원색적 비난과 욕설이 적지 않다. 도를 넘은 사적 보복도 그 연장선상이다.

이런 분위기는 되레 학교와 학부모 간 건강한 소통까지 위축시킬 수 있다. 아까 기자가 학교에 전화하기를 머뭇거린 것과 마찬가지다.

교사의 훈육에 대한 오해, 다툼은 학부모와 교사 간 ‘불통’에서 초래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논란이 됐던 한 유명인의 사례만 봐도 그렇다. 발달장애아 자녀를 둔 이 유명인은 아이 가방에 녹음기를 넣어 몰래 수업을 녹음하고 이를 빌미로 특수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샀다. 해당 교사는 직위해제 됐다.

논란이 커진 뒤 낸 입장문에서 그 유명인은 ‘(교사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재판에 들어가고 나서야 상대 교사의 입장을 언론보도를 통해 보았다’, ‘막연히 이렇게 고소를 하게 되면 중재가 이루어지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었다’고 밝혔다. 교사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기에 앞서 일방적으로 수업을 녹취하고 곧장 법정에 가는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건전한 질문이나 민원조차 제기하기 어렵게 만드는 과도한 ‘부모 탓’은 이런 오해의 골만 깊게 할 수 있다.

지난 4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운동장에서 열린 공교육 멈춤의 날 촛불집회에 ‘교사들의 억울한 죽음, 진상을 규명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이한결기자 always@donga.com


● 교권 추락 기저엔 공교육 붕괴
사실 교권 붕괴의 기저에는 공교육 붕괴가 있다. 학교가 설 자리를 잃고 만만해지면서 교사들의 권위도 덩달아 떨어진 측면이 크다. 학교 수업 시간에는 졸거나 다른 일을 하면서 학원에서 저녁 늦게까지 ‘열공’하는 게 학생들의 일반적인 모습이 된 지 오래다. 학원 수업은 하루 빠지는 것도 아쉬워 보강을 챙겨 듣는다는데, 되레 학교를 개근하면 ‘체험학습(결석하고 체험, 여행 등 자유 활동을 하는 것) 한 번 못 한 개근거지’라는 말을 듣는 게 요즘 현실이다. 이렇게 공교육이 무너진 상황에서 교사의 교권인들 제대로 섰을 리 없다.(만만해진 학교, 만만해진 교사 [이미지의 포에버 육아]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722/120361124/1)

이를 등한시하고 부모 탓만 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일부 극단적인 부모들의 잘못된 행태는 시정하고 처벌도 해야 한다. 하지만 교권 추락 현상은 복합적으로 발생한 문제다. 부모들의 아동학대 신고를 어렵게 하고, 교사 처벌의 허들을 높이면 당장 곤란한 상황에 처할 교사들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궁극적인 교권 회복을 이뤄내긴 어렵다.

최근 정신과병원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교사 환자와 상담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집단행동에 참여하고 있다는데, 집회 나가면 다 함께 구호를 외치면서 한참을 울다가 들어온다고 하더라”며 “어렵게 만들어진 변화의 기회인데 집회 내내 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나 싶어서 조금 안타까웠다”고 그는 말했다.

이번 주말부터 교사들의 집회가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질서 있는 단체행동으로 사회에 결기를 보여주었고 서로의 마음을 보듬었다면,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공교육 현장의 변화, 근본적인 해결에 대한 화두로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교권 추락 이슈가 그저 교사와 학부모 간 대결 구도, 한쪽의 다른 쪽을 향한 원망으로 단순화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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