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사고에서 과실치사의 인과관계 입증 기준이 민·형사 사건에서 다르게 적용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지난달 31일 의료 사고로 사망한 피해자 유가족이 의료법인 A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상고심에서 상고를 기각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대법원 1부는 같은 사건에서 피해자를 직접 진료한 마취과 전문의 B씨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 의료법위반 상고심에서 업무상과실치사에 관한 부분을 파기 환송했다.
앞서 강서구 소재 병원(의료법인 A)에서 어깨수술을 받던 70대 남성이 수술 중 심정지가 발생해 사망했다.
해당 병원에서 마취과 전문의로 일하는 B씨가 환자에게 전신마취를 했고, 간호사에게 환자의 상태를 지켜보도록 지시한 후 수술실을 나왔다. 이후 수술 중 환자에게 이상소견이 발생해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를 취했고, 인근 병원 응급실로도 이송했지만 결국 환자는 사망했다.
사망한 환자의 아내와 자녀들은 병원이 국소마취를 한다고 설명한 후 전신마취를 시행했고, 전신마취의 위험성, 합병증, 후유증 등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또 환자에게 마취를 한 전문의 B씨에게 의료법 위반,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가 있다며 형사 고소했다.
손해배상과 관련한 1심 소송에서 재판부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하며, 의료법인 A가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판부는 “마취과 전문의는 마취 유지 중 망인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헤 망인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한 데 대해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않아 제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그로 인해 망인의 사망 위험성이 급격히 높아졌음이 명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취과 전문의 과실과 망인의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2심에서도 환자 가족들인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다만 A가 항소한 이유 중 장례비용 과다 지출 부분은 이번 사건과 인과관계에 있는 비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환자 가족들에게 일부 감액한 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의료법인 A는 대법원에 상고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없고, 설사 과실이 있다고 해도 환자의 사망과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이에 대해 대법원은 마취과 전문의 B씨의 의료 과실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환자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B씨가 마취 중 망인에 대한 감시 업무를 소홀히 해 응급상황에서 간호사의 호출에 즉시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제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지 못한 잘못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만약 B씨가 간호사 호출에 대응해 신속히 혈압회복 등을 위한 조치를 했더라면 저혈압 등에서 회복했을 가능성도 상당하다고 보인다. 진료상 과실은 망인의 사망을 발생시킬 개연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법원은 전문의 B씨에게 적용된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다. 손해배상과 같은 민사사건과 달리 형사사건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증명’이 기준이며, 민사사건에서의 인과관계 추정 법리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마취 유지 중 환자 감시, 신속한 대응 업무를 소홀히 한 B씨의 업무상 과실이 인정된다는 원심 판단을 수긍한다”면서도 “다만 B씨가 직접 피해자를 관찰하거나 간호사의 호출을 받고 신속히 수술실에 가서 대응했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더 할 수 있는지, 조치를 했다면 피해자가 심정지에 이르지 않았을 건인지 알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환자에게 심정지가 발생했을 때 피고인이 피해자를 직접 관찰하고 있다가 심폐소생술 등의 조치를 했으면 환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의료과오 민사소송에서 진료상 과실이 증명된 경우 인과관계 추정에 관한 법리를 정비해 새롭게 제시했다”며 “반면 의료과오 관련 형사 사건에서 ‘업무상 과실’이 증명됐다는 것만으로 인과관계가 추정되거나, 증명 정도가 경감돼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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