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 돌찍기’ 가해자 경찰도 속였다… 신고 열흘뒤 피해자는 끝내 숨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7일 20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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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0일 낮 12시경 “전남의 한 주택가에 차량이 있는데 썩는 냄새가 나는 것 같고 남자 2명이 다리를 절룩거리고 다닌다”는 내용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하던 경찰은 차량 주인 이모 씨(31)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동생들이 차량을 사용하는데 인근 공사장에서 일용근로를 하고 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이 씨는 경찰에 태연하게 거짓말을 한 뒤 차량에 있던 2명에게 전화를 걸어 현장에서 서둘러 벗어나라고 지시했다. 10일 후인 7월 29일 차량에 있던 1명은 숨지고 1명을 중태로 발견되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씨의 명의 차량(사진)은 또래 청년 2명을 6월 말부터 한달 동안 숙식하게 강요하며 심리적 지배(가스라이팅)를 했던 살인 범행 장소다. 여수=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이 씨는 2019년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라는 거짓말을 한 뒤 후배 김모 씨(30), 친구 안모 씨(31)에게 법률적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접근했다. 최근까지 두 사람을 위해 소송 8건을 진행해 총 9억 원 가량 채무가 생겼다고 거짓말을 했다. 두 사람에게 5년 동안 빚이 있다는 거짓말을 항상 하며 형사처벌도 받을 수 있다고 집요하게 심리적으로 억압했다.

이 씨는 4년 동안 수시로 두 사람에게 돈을 뜯어냈다. 올 1월부터는 협박을 본격화했다. 6월 말부터 두 사람에게 차량에서 숙식을 하며 돈을 갚을 방법을 찾으라고 폭행했다. 그는 두 사람에게 “돈을 갚기 전까지 잠도 자지 말고 밥도 먹지 말고 화장실도 가지 말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일용근로나 야간 아르바이트로 10여 만 원을 벌어올 경우 차량에서 3시간 정도를 자게 허락했다.

이 씨는 “돈을 갚지 못하는데 잠을 자냐.”며 반 토막 벽돌, 야구방망이 등으로 두 사람 허벅지를 때렸다.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지켜보며 행여 잠이 들 경우 두 사람이 서로 돌로 허벅지를 때리게 했다. 두 사람에게 상대방이 잠이 든 것을 발견하면 돌로 허벅지를 때리라고 시켰다.
이 씨는 두 사람이 서로 허벅지를 약하게 때린다고 생각하면 직접 가 폭행하고 벌금 30만 원을 추가했다. 한달 가량 지속된 폭행으로 두 사람 허벅지는 썩어들어갔다.

이 씨는 두 사람 상태가 위중한 것을 알면서 방치하며 폭행을 이어갔다. 그는 경찰 전화를 받은 후 범행이 들통 날 것으로 대비해 두 사람이 채권채무 문제로 허벅지 돌 찍기 했다는 거짓말을 하도록 사전 은폐했다. 그는 최근 7개월 동안 김 씨와 그의 엄마, 안 씨에게 총 6억 6100만 원을 뜯어냈다. 그는 여전히 빚이 많다며 계속 폭행을 해 안 씨는 숨지고 김 씨는 6개월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전남 여수경찰서는 살인 혐의 등으로 이 씨를 구속해 조사한 결과, 두 사람이 진 빚은 전부 가짜였다. 이 씨는 봉사단체 간부로 활동하며 지역 유지 행세를 했다. 그는 조서에 직업을 무직으로 적자 채권 추심원으로 써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외형을 중요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현재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의 가짜 빚 요구에 피해자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하나씩 드러나는 이 씨의 범행수법은 재판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는 피해자 두 사람을 집요하게 심리적으로 지배하며 노예처럼 다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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