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내근직 2900여명을 치안 현장으로 배치하는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업무가 적거나 중복되는 과를 통폐합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인력을 신설되는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 등에 배치하는 것이 골자다.
갑작스럽게 인력 감축 대상이 된 경찰들과 인력 충원을 기대했던 지구대·파출소에선 당혹스럽단 반응이다. 검찰로부터 수사 종결권을 넘겨받으면서 강화했던 수사심사과도 3년 만에 폐지 수순을 밟는다. 경찰 수사 종결권 축소와 맞물린 조치란 해석이 나온다.
◆내근직 2600여명 ‘기동순찰대’로…지구대·파출소 충원 없어
이번 조직 개편으로 감축된 2900여명은 범죄예방대응과에 설치되는 기동순찰대에 2600여명, 여성청소년 부서에 300여명이 투입된다.
그러나 일선 경찰관들은 지구대·파출소부터 부족한 인력 충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구대에 근무하는 한 경찰은 내부망에 “전국 지구대·파출소 정원보다 현원이 1568명 부족한 실정”이라며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잉여 인력은 지구대·파출소 각 팀별로 부족한 현원을 정원에 맞게 채워주고, 남는 인력으로 기동순찰대를 창설하는 게 맞다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경찰청은 전국 지구대·파출소에 확보한 인력을 배치하면 팀당 0.4명이 늘어나는 데 그쳐 기동순찰대를 부활시킨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이 경찰은 “전국 지구대·파출소에 인력을 배치해 달라는 게 아니라 정원 대비 부족한 현원을 보충해 달라는 상식적 요구를 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다른 경찰관도 “고위층에서는 지구대·파출소가 순찰 업무만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계시는 건 아니겠죠. 모든 형사사건 처리 및 신고를 다 처리하는데 제일 무시하는 것 같다”며 인력 충원안이 빠진 것을 비판했다.
수도권 소재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도 내부망에서 “지역경찰은 같이 출동한 직원 한 명이 더 필요하다. 그래야 주민의 위험한 현장을 조금이나마 더 빨리 도와줄 수 있다”며 “인원이 부족하고 치안이 어려운 지역관서에 1명이라도 먼저 보내주시면 고맙겠다”고 호소했다.
◆강력팀 형사 1300여명, 형사기동대로…“순찰까지 하라니”
시·도청과 경찰서 강력팀에서 형사들을 차출해 1300여명 규모의 권역별 형사기동대로 배치한다.
형사기동대는 1999년 기동수사대로 바뀐 후 2006년 광역수사대에 흡수됐었다. 부활하는 형사기동대는 수사와 순찰을 병행하며 필요 시 조직범죄 수사에도 투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수사에 집중해야 할 형사가 유흥가 등 우범지대 순찰까지 투입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온다. 인력을 뺴앗기는 강력팀에서도 불만이 제기된다.
한 경찰 관계자는 “당장 검거해야 할 피의자가 많은데 사복을 입고 우범지역에서 순찰하는 게 과역 범죄 분위기 제압에 실질적 효과가 있을 지 의문”이라며 “내부적 반발과 불만이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강력범죄를 담당하는 또다른 경찰관은 “강력팀 인원이 빠지는 것에 우려가 있다. 사람을 빼가는 건데 형사기동대가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니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5일마다 당직을 돌고 다음 날 오전까지 CCTV를 따러 다녀야 해서 인력이 빠듯한 상황”이라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강력 수사를 줄이고 형사기동대로 활용하겠다는 건데 현장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인력과 업무에 중복은 없는지, 일을 떠넘기게 되는 부분은 없을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감축 직격탄’ 맞은 정보경찰…“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정보경찰은 이번 조직 개편안에서 ‘내근직 감축’의 직격탄을 맞았다. 경찰청은 전국 197개 경찰서의 정보과를 없애 시도청으로 통합한다.
영등포경찰서, 마포경찰서, 용산경찰서 등 집회·시위가 많은 62개 경찰서의 정보과는 존치되지만, 실질적으로 394명의 정보경찰이 감축될 예정이다.
한 정보경찰은 “우리 인원을 감축해 지구대로 내보낸다는 건데 직원들은 앞날을 알 수 없으니 불안해 한다”며 “전체적인 경찰 인력은 증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역경찰을 늘리려다 보니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형태가 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경찰도 “지금처럼 경찰서에 정보과가 있으면 서장 밑에 있어서 좀 자유로운데, 지방청에 가면 과장 밑에 있게 된다”며 “일을 잘 해도 내 공이 아니라 지방청 공이 되는 거라 가기 싫어하는 분위기가 암암리에 있다”고 전했다.
정보경찰은 위험 예방을 위해 기업, 사회단체, 언론사 등의 동향을 수집하고 각종 정보를 분석한다. 업무 특성상 민간인 사찰이나 정치 개입 의혹이 수 차례 불거져 축소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일선 경찰의 외사 기능을 축소하는 것에도 우려가 제기된다.
한 안보경찰은 “무엇보다 중요한 대테러 부분 대응이 어려워질까 걱정된다. 외사는 오래 일한 전문가가 중요한 분야”며 “이러다가 테러 한 건만 터져도 다시 외사 기능을 부활시킨다고 할 건가”라고 꼬집었다.
◆경찰 수사심사과 폐지…“검경 수사권 조정 유명무실화”
전국 시도청의 중복 업무를 통합해 28개 과를 줄이면서 수사심사과(12개)도 폐지 절차를 밟는다.
수사심사는 사건을 종결하기 전 추가 수사 여부를 점검하는 역할로,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라 1차 수사종결권을 갖게된 경찰 수사를 감시하기 위해 2020년 도입됐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3년 가까이 운영해 본 결과 수사과장·팀장이 해야 할 역할이라 판단해 장기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현장 수사관들은 수사심사 업무가 대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다”며 폐지를 반기면서도 “전 정권 때 경찰 수사 권한이 커지면서 견제하겠다는 의미로 신설된 것이고, 수사 완결성을 높이기 위한 심사제도는 수사의 기본이므로 외부에서 비난할 가능성은 농후하다고 보인다”고 짚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유명무실해졌다”며 “일부 특수한 사건 수사만 가능했던 검찰 기능이 최근 다시 확대되면서, 경찰의 견제 기능이 약화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범죄 예방에 더 집중하라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정부는 최근 수사준칙 개정을 통해 경찰에 대한 검찰의 보완 수사 요구 및 재수사 권한을 확대한 바 있다. 사실상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축소하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의 일환이란 해석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