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사마르칸트를 교역 도시로 만든 ‘티무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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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가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관광도시인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와 실질 교류 협력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그리스 시대부터 ‘마라칸다’로 알려졌던 사마르칸트는 1220년 칭기즈칸이 점령하기 전까지 실크로드(교역지)로 번성했던 곳입니다. 이후 14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수도가 되면서 다시 동서양의 문물이 만나는 국제도시로 번창하게 되었고, 현재 남아 있는 유적의 대부분이 그때 세워졌습니다. 2001년에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티무르(1336∼1405·사진)는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사마르칸트를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키운 사람입니다. 차가타이한국이었던 사마르칸트 부근 케슈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통치자였던 아미르 카즈간이 죽고 1361년 카슈가르의 칸 투글루크 티무르가 쳐들어오자 그 밑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곧 도망쳐서 자신의 처남이자 아미르 카즈간의 손자인 아미르 후사인과 연합해 1366년경 이 지역을 장악해 버립니다. 그리고 1370년경에는 함께했던 후사인마저 암살하고 자신이 몽골 제국의 후계자이며 사마르칸트의 유일한 주인이라고 선언합니다.

1380년 마침내 카슈가르까지 점령한 티무르는 이후 그 여세를 몰아 인도와 러시아를 거쳐 지중해까지 쳐들어갑니다. 그 과정에서 무자비하고 철저한 살상으로 칭기즈칸보다 잔인하다는 평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마르칸트를 철저하게 파괴했던 칭기즈칸과 달리 훗날 티무르는 자신이 세운 왕조의 문화적 업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그가 마련한 기틀 위에서 그 후계자들의 치세에 찬란한 문화의 꽃이 피었기 때문입니다.

티무르는 대규모 성벽과 도로를 만들었고, 길과 길이 만나는 곳마다 시장을 조성해 사마르칸트를 다시 국제적인 교역 도시로 성장시켰습니다. 또한 정복지에서 건축 전문가, 석공, 보석 장인 등 최고의 공예기술자와 장인들을 끌고 와 도시를 웅장한 건물과 멋진 장식으로 꾸몄습니다. 지금도 볼 수 있는 비취색 돔과 하얀 벽, 황금빛과 파란색을 중심으로 하는 화려한 장식들은 그때 티무르가 아낌없이 후원했던 학문과 예술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칭기즈칸의 후예라 칭했던 티무르는 중국 땅을 되찾는 데는 실패합니다. 원정을 나선 길에 급작스러운 병으로 죽음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티무르가 죽고 치열한 권력다툼 끝에 넷째 아들 샤 루흐가 티무르 제국을 이어받아 진정한 전성기를 이끌었지만, 그의 아들인 울루그베그는 물려받은 지 2년 만에 자신의 아들에게 목이 잘립니다. 혼란기로 들어선 제국은 1500년 북방의 신흥 세력인 우즈베크의 샤이바니 칸에 의해 사마르칸트가 점령당하면서 쓸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이후 사마르칸트는 다시는 그때의 영광을 되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움은 오늘날에도 인류가 지켜야 할 유산으로 남아 세계의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마라칸다#티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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