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64·사법연수원 15기)의 임기가 24일 만료되면서 25일 0시부터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30년 만에 현실화됐다.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66·15기)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상당 기간 사법부 파행 운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안 권한대행을 포함해 대법관 13명은 25일 긴급 회동을 갖고 대법원장 공백 사태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대법관들은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가 계속 지연될 경우 전원합의체 사건 선고를 연기할 것인지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해졌다. 또 안 대법관 역시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나는 만큼 공백 장기화 시 대책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장 권한대행 체제 가동은 김덕주 전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하고 최재호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았던 1993년 9월 이후 30년 만이다. 1993년은 인사청문회가 없던 탓에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2주 만에 끝났지만, 이번에는 인사청문회와 국회 본회의 일정까지 감안할 경우 올 11월까지 공백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국회가 ‘대법원장’ 자리의 무거움을 헤아려 줘야 한다”며 임명동의안 처리를 촉구했다.
오늘부터 대법원장 공석… “전원합의체-후임 대법관 제청 등 차질”
30년만의 권한대행 체제 국회 일정 불투명… 野 “이균용 부결” 중대 사건 심리 ‘올스톱’ 가능성 퇴임 앞둔 대법관 후임 공석 우려도… 상당 기간 사법부 파행 운영 불가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 여파로 민주당 원내대표가 사퇴한 상황이다 보니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국회 본회의가 언제 열릴지 불투명하다. 또 민주당 측에선 본회의가 열리더라도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원 안팎에선 이런 이유로 대법원장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 전원합의체 ‘올스톱’ 가능성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대법원장 궐위 시 임명일자, 사법시험 기수, 연장자 순으로 선임인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이에 따라 안 대법관이 권한대행을 맡았지만 ‘권한대행이 어디까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명확한 규정이 없다.
이에 대법원은 대법원장 권한대행의 권한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판단하기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 하지만 내부에선 명시적 규정이 없는 만큼 제한적 권한만 행사해야 한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에 따라 먼저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선고부터 ‘올스톱’ 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 소부에서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겨 심리한다.
문제는 전원합의체가 출석 대법관 과반수 의견으로 결론이 나기 때문에 대법관 의견이 팽팽할 경우 대법원장이 ‘캐스팅 보트’를 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법관들은 대법원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전원합의체 사건 심리는 어렵다고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선임 대법관이 재판장 권한대행을 맡아 전원합의체 사건을 선고한 건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정년퇴임으로 3개월 공백이 이어졌던 1978년 12월∼1979년 3월 4건뿐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는 게 법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판결의 정당성 확보 차원에선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4명씩 나눠 상고심을 심리하는 소부 선고 역시 일부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은 안 대법관의 업무가 늘어난 만큼 그가 맡은 소부 사건 심리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법원 규칙 제정·개정 등 대법원장 승인이 필요한 일부 업무들은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예상된다. 권한대행 체제에선 ‘현상 유지’ 정도의 제한적 업무만 가능하다는 게 대법원 내 중론이다.
● 후임 대법관 인선 작업도 차질
내년 1월 퇴임하는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 후임 인선 작업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후임 대법관 제청은 추천위원회 구성과 후보자 국민 천거 공고로 시동을 거는데, 일정상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시작돼야 한다. 하지만 대법관 후보자 제청권은 헌법이 정한 대법원장 권한인 데다 대법원장 권한대행이 대법관 후보자를 임명 제청한 선례도 없다.
만약 후임 대법관 제청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대법원장뿐 아니라 대법관 2명까지 공석 사태가 빚어지면서 상고심 심리가 중단될 수도 있다. 대법원은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권한대행 체제에서 국민 천거 일정을 개시할지도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내에선 이 후보자가 낙마할 경우 향후 인사청문회 절차를 고려해 윤석열 대통령이 새 후보자를 서둘러 지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법원 고위 관계자는 “대법원장 대행이 후임 대법관을 지명하는 것은 헌법상 바람직하지 않다”며 “늦어도 10월에는 새 후보자가 지명돼야 후임 대법관 후보 2명을 인선할 수 있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일단 후보자를 지명한 만큼 국회 논의를 기다린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후보자 인준안 부결 시 대책에 대해 “가정을 전제로 답변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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