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에서의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대북전단 금지법’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다. 2020년 12월 헌법소원이 제기된 지 약 2년 9개월 만에 나온 결론이다.
헌재는 26일 대북전단 금지법으로 불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 제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대2 의견으로 위헌 결정했다.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은 북한을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최대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 중 헌재 심판대에 오른 것은 3호가 정한 ‘전단 등 살포’ 행위를 금지한 부분이다. 재판관 7명은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유남석·이미선·정정미 재판관은 “북한의 특성상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라며 “심판 대상 조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고, 그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심판대상조항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보장은 중대한 공익에 해당하고 국가는 남북 간 평화통일을 지향할 책무가 있으나, 표현행위자가 받게 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은 그 표현의 의미와 역할의 중요성에 비해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재판관들은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이 경우에 따라 경고·제지하거나 사전 신고 및 금지 통고 제도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대안 수단이 있는데도 표현의 자유를 일괄 금지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취지다.
이은애·이종석·이영진·김형두 재판관은 나아가 “국민의 생명·신체에 발생할 수 있는 위해나 심각한 위험은 전적으로 제3자인 북한의 도발로 초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판대상조항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등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심판대상조항은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다”며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 살포 외의 다른 방법, 예컨대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충분히 표명될 수 있다”고 봤다.
또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처벌은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한다”며 “북한이 남북합의서를 준수하면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은 물론 한반도 전체의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바, 이러한 공익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의견을 냈다.
헌재의 위헌 결정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 행위를 처벌하는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는다.
남북관계발전법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6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남북관계가 악화된 이후 발의됐다.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담화를 통해 한국 내 탈북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한 바 있다. 남북관계발전법은 야권의 반대를 뚫고 같은해 12월 1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같은 달 29일 공포됐다.
이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 등은 남북관계발전법 일부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해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