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김여정 하명법’ 논란
법통과 2년 9개월 만에 결론
재판관 9명중 7명 “기본권 침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가능성도
헌법재판소가 접경지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할 경우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12월 이른바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킨 지 2년 9개월 만이다. 북한 인권단체들은 개정안 공포 당일인 2020년 12월 29일 “표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 “표현의 자유 침해 지나쳐” 7 대 2 위헌 결정
헌재는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 등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을 결정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김형두 정정미 재판관뿐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돼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 5명 중에서도 3명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날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었다. 이 조항은 접경지역에서 대북전단 살포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헌재는 남북 간 긴장 완화 등을 위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은 인정하면서도 “제한되는 표현의 내용이 매우 광범위하고, 최후의 수단이 되어야 할 국가형벌권까지 동원한 것이어서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대북전단 살포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표현의 자유를 일괄적으로 금지해선 안 된다는 취지다.
김형두 이영진 이은애 이종석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은 북한의 도발로 인한 책임을 전단 살포 행위자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며 “해당 조항이 없더라도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전단 등 살포로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직무집행법에 의거해 경고·제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반면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이들은 “표현 내용에 대해선 아무런 제한을 가하지 않고 있다. (해당 조항은) 전단 살포라는 표현 방법에 대한 제한으로 봐야 한다”고 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번 결정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헌법적 가치라는 걸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김여정 하명법’ 논란 마침표
이날 위헌 결정이 나온 조항은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이 2020년 4∼6월 접경 지역에서 대북 전단 50만여 장을 날린 게 발단이 돼 만들어졌다. 당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은 담화를 내고 “쓰레기들의 광대놀음(대북전단 살포)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했다. 이후 불과 4시간 만에 통일부가 대북전단금지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고 ‘김여정 하명법’이란 당시 야당(국민의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개정안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해당 조항 위반으로 기소돼 1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여정 하명법에 대한 위헌 결정은 정당한 일”이라고 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에 따라 박 대표에게는 무죄가 선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안팎에선 이날 위헌 결정이 향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이 ‘중대 도발’로 위협 수위를 높일 경우 윤석열 대통령의 결심에 따라 확성기 방송 재개도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1호에 명시된 대북 확성기 방송 금지 조항은 이날 헌재의 심판 대상은 아니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발표한 판문점 선언에 대북 확성기 방송 중지가 명시돼 있다 보니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려면 선언 파기나 효력 정지가 필요하다”면서도 “결심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방송 재개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헌재의 위헌 결정을 환영한다”며 “결정의 취지를 존중해 국회의 남북관계발전법 관련 조항 개정 노력에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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