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 6년 전합 전수분석]
김명수 대법원 6년… 2006년 3월이후 전합 판결 325건 전수분석
金, 진보대법관 2인과 80% 의견일치
전합 전원일치 판결 줄고 양극화 심화
지난달 24일 퇴임한 김명수 전 대법원장(사진)이 임기 중 대법원 최고 판결기구인 전원합의체(전합)에서 뚜렷한 진보 성향을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김 전 대법원장은 재임 6년 동안 한 번도 소수 의견을 내지 않았다.
이는 동아일보가 이용훈 양승태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인 2006년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전합 판결 325건을 입수해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한규섭 교수팀(폴랩)과 함께 전수 분석한 결과다. 한 교수가 미국 연방대법관 분석 기법으로 산출한 판결성향지수는 마이너스면 진보, 플러스면 보수에 해당한다. 분석 대상이 된 대법관은 대법원장 3명을 포함해 총 50명이었다. 김 전 대법원장의 판결성향지수는 ―0.268로 50명 중에서 진보 성향으로 17위였다. 이용훈(0.063·25위) 양승태(0.257·34위) 전 대법원장보다 진보 색이 뚜렷했다. 김 전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들의 평균 지수 역시 ―0.236으로 진보 성향이 강했다. 이용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임명 제청한 대법관들의 평균 지수는 각각 0.08, 0.231이었다. 김 전 대법원장은 특히 진보 성향 법관 연구모임 출신인 노정희(우리법연구회), 김상환(국제인권법연구회) 대법관과 80% 이상의 의견 일치를 보였다.
또 김 전 대법원장은 2017년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장이라는 이유로 소수 의견에 가담하지 못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소수 의견을 내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실제로는 소수 의견을 한 건도 내지 않고 임기를 마쳤다. 법원 관계자는 “진보 성향 대법관이 다수가 되면서 소수 의견을 낼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명수 사법부에서 전합 전원일치 판결이 줄어든 것으로도 나타났다. 김명수 사법부의 전합 전원일치 판결 비율은 14.7%로 이용훈 사법부(36.8%)와 양승태 사법부(33.6%)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김명수 大法, 양극화 심화… 전원일치 판결 14.7% 역대최저 수준
이용훈-양승태 때의 절반도 안돼 김명수 대법, 진보-보수 극명 대립 전합 판결 72%, 판례변경-새 법리 “의견 갈려 법적 안정성 약화” 평가
대법원 최고 판결 기구인 전원합의체(전합)에서 대법원장과 대법관의 전원일치 의견으로 내려진 판결은 높은 법적 권위를 갖고 사회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런 만큼 대법관들도 치열한 토론을 통해 마지막까지 의견 일치를 시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동아일보와 서울대 한규섭 교수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김명수 전 대법원장 재임 6년간 전원일치 판결(17건)은 전체(116건)의 14.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이용훈 사법부(36.8%)와 양승태 사법부(33.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 “대법관 의견 극명하게 갈려”
대법관들이 전합에서 전원일치 판결을 시도하는 것은 판결 불복의 여지를 줄이고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양승태 사법부에선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서 전원이 유죄 판단을 내리며 논란을 일단락시켰고, 형사 사건을 수임할 때 성공보수를 약정하는 건 무효라고 판단해 법조계 관행을 바꿨다. 미국에서도 1954년 연방대법원이 공립학교 인종 분리는 위헌이라는 ‘브라운 판결’을 전원일치로 내리며 민권운동을 촉발했다.
반면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에선 진보 성향이 뚜렷한 대법관이 다수 임명되다 보니 대법관 사이 이념적 간극이 벌어졌고, 서로 설득하거나 절충하려는 대법관들의 노력이 줄어든 반면에 소수의견을 적극적으로 남기며 ‘소신’을 드러내는 경향이 강해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전원일치 판결이 줄어든 건 진보와 보수 성향 간 대법관들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린 판결이 많았다는 것”이라며 “전원일치 판결이 줄면서 전합이 가지는 규범력과 법적 안정성도 약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 분석에서 김명수 사법부 전합 판결 116건 가운데 판례 변경은 45건, 최초 법리를 제시한 판결은 39건으로 집계됐다. 10건 중 7건 정도(72.4%)는 판례를 변경하거나 새 법리를 제시한 것이다.
새 판례와 법리를 제시하는 판결이 전원일치로 나지 않을 경우 논란의 여지가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대일 배상청구권 인정 판결을 비롯해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 배상 책임 첫 인정(판례 변경)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 처분 위법(최초 법리 판시) △양심적 병역 거부 첫 인정(판례 변경) 등이 전원일치가 아닌 다수의견 판결로 내려졌다.
● 논쟁적 사건에서 캐스팅보터 된 대법원장
전합에서 대법원장은 재판장을 맡아 가장 마지막에 표결을 한다. 그런 만큼 관례적으로 다수의견에 서 왔다. 재판장이 소수의견에 설 경우 생길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줄이자는 취지다.
그런데 이번 분석에선 김 전 대법원장 재임 기간 6건의 7 대 6 판결이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념 대결이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에서 대법원장이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행사한 것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때 대부분 진보 성향 대법관 편에 섰다. 2019년 11월 논쟁이 치열했던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재판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큐멘터리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부도덕한 플레이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스네이크 박’이라고 비방한 내용 등을 문제 삼아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재를 내렸다. 제재의 부당성 여부에 대해 대법관들은 6 대 6으로 갈렸는데 김 전 대법원장이 “정치인 등 공인에 대한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인정돼야 한다”며 진보 성향 대법관들의 손을 들어줬다.
김명수 사법부의 진보화는 노동 사건에서도 두드러졌다. 올 5월에는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 노조의 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사회 통념상 합리성’만 있으면 유효하다고 인정한 판례를 45년 만에 뒤집고 노조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며 노동계의 손을 들어줬다. 김 전 대법원장은 이 사건에서도 진보 성향 대법관들과 의견을 같이하며 7 대 6 판결을 만들었다.
한 전직 대법관은 “대법원장은 전합 판결이 7 대 6이 될 경우 자신의 선택이 드러나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통상 대법관 1명을 설득하고 자신이 다수의견에 서면서 8 대 5로 만드는 게 대법원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인데 김 전 대법원장은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