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파장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서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이후 지난달 25일부터 이어진 사법부 공백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이 새 대법원장 후보자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수개월의 사법부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 안철상 민유숙 대법관 후임 제청 차질
대법원은 가장 선임인 안철상 대법관이 대법원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지만 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권한대행의 권한이 ‘현상의 유지, 관리 범위 내’로 제한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자는 이날 국회 부결 후 서울 서초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을 나서면서 취재진과 만나 “어서 빨리 훌륭한 분이 오셔서 대법원장 공백을 메우고 사법부가 빨리 안정을 찾는 것이 저의 바람”이라고 했다.
당장 내년 1월 1일 퇴임하는 안 권한대행과 민유숙 대법관의 후임 제청 절차에 차질이 우려된다. 대법관 인선은 추천위원회 구성 등을 포함해 3개월가량 소요되는데, 안 권한대행이 전례 없이 후임자를 제청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법원장이 내년 1월 1일까지 임명되지 않으면 수장 공백과 함께 대법관 13명 중 2명이 비게 된다. 내년 2월로 예정된 전국 3100여 명의 법관 정기인사도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 권한대행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법관 제청과 법관 인사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상황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하겠지만 결국은 필요성, 긴급성, 상당성에 의해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
내년 1월 안 권한대행과 민 대법관이 퇴임하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 출신인 김선수 대법관이 최선임으로서 후임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여당 일각에서는 야권이 총선 국면에서 진보 성향 권한대행 체제까지 염두에 두고 이 후보자에 대한 부결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역사에 기록될 참담한 상황”이라며 “사법부가 여야의 극단적 대결에 이용돼 유감”이라고 말했다.
● 전원합의체·소부 선고 지연 현실화
재판 지연도 악화될 공산이 크다.
우선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고 대법관 12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선고가 무기한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사회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나 판례 변경이 필요할 때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겨 심리한다. 찬반 의견이 팽팽하면 대법원장이 캐스팅보트를 쥔다. 이 때문에 대법원장 공석 상황에서 사회적 파급력이 큰 전원합의체 심리가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원 상태에서 전원합의체 선고가 이뤄질 경우 법리적 문제가 발생할 소지까지 있다. 실제로 선임 대법관이 재판장 권한대행을 맡아 전원합의체 사건을 선고한 건 민복기 전 대법원장의 정년퇴임으로 3개월 공백이 이어졌던 1978년 12월∼1979년 3월 4건뿐이다.
이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야 할 사건이나 새로운 법리 등이 나올 수 있어 대법원 판례를 기다리는 하급심 판결도 줄줄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대법관 12명이 4명씩 나눠서 상고심을 심리하는 소부 선고 역시 차질을 빚게 됐다. 대법원 규칙 제정·개정 등 대법원장의 승인이 필요한 일부 업무는 사실상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안 권한대행은 전원합의체의 심리·선고 가능 여부에 대해 “국민의 재판 받을 권리는 언제든지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대행 체제하에서 이뤄진 사례도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수장 부재로 인한 각종 혼란이 현실화하면서 대법원은 이날 이 후보자 낙마에 대한 별도의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사법부 비상 운영에 대한 실무진 회의를 개최하는 등 긴박하게 움직였다. 안 권한대행은 이르면 10일 대법관회의를 소집해 사법부 공백 사태와 관련된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다. 권한대행의 권한을 확대 해석하는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장은지 기자 jej@donga.com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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