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상영 프로그램 처음 도입
바다 관련 단편영화 등 볼 수 있어
내달 19일까지 매일 4차례 상영
야외엔 31개팀 설치 작품도 전시
“정신병원에 갇힌 꼴이네요. 점점 더 엉망이 돼 가고 있습니다.”
스크린 속 한 서양 중년 남성은 항구에 입항하지 못하고 기약 없이 선박에서 대기해야 하는 데 지쳤다면서 이렇게 푸념했다. “한국에 가더라도 배에서 내릴 수 없다면서요. 우리는 다시 국제수역으로 나가야 하나요?”라고 말하며 불안해하는 여성도 있었다.
14일 오후 3시경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 근처 한 건물의 약 6.6㎡(약 2평) 공간에 마련된 임시 상영시설. 방석을 깔고 앉은 관람객 4명이 레베카 모스 감독의 다큐멘터리 ‘국제수역’에 몰입하고 있었다. 21분 분량의 영상은 2016년 9월 일본 해역에 멈춰 선 한진해운 컨테이너선 내부를 비췄다. 감독은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예술가가 한 장소에 머물며 작업)인 ‘바다에서 23일’에 선정돼 캐나다에서 태평양을 건너 중국 상하이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승선 일주일 만에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부두 입항료를 낼 수 없게 됐고, 감독과 승선원은 일본 해역에서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15일을 배에서 대기해야 했던 항해사는 “회사가 곧 나를 해고할 것”이라며 걱정했다. 감독은 글로벌 해운산업의 현실과 혹독한 선원 근로 환경을 대중에게 알리려고 이 같은 영상을 제작했다고 했다.
부산 일광해수욕장 일원에서 이날 시작된 ‘2023 부산바다미술제’의 스크리닝(상영) 프로그램인 ‘또 다른 바다들’의 한 모습이다. 사단법인 부산비엔날레조직위 관계자는 “올해 처음 미술제에 스크리닝 세션을 도입했다”며 “야외에 설치한 작품에 더해 올해 미술제의 주제를 더욱 폭넓게 다룰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스크리닝 프로그램은 미술제가 폐막하는 다음 달 19일까지 ‘실험실’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 건물에서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4회에 걸쳐 진행된다. 해운산업의 실태와 해수면 상승, 원자력발전소로 인한 해수 오염 등 바다와 관련된 단편영화와 애니메이션 등 6편이 회당 3편 상영된다. 회당 관람객은 최대 10명으로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을 해야 참여할 수 있다.
부산바다미술제는 1988 서울 올림픽의 사전 문화행사 중 하나로 1987년 처음 시작됐다. 1996년까지 매년 해운대와 광안리해수욕장 등에서 열리다가 이후 부산비엔날레와 통합됐다. 2011년부터 다시 독립된 행사가 된 바다미술제는 홀수 해마다 부산의 해안에서 개최된다. 이처럼 바다에서 정기적인 미술제가 열리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짝수 해에는 부산비엔날레가 진행된다.
올해 부산바다미술제의 주제는 ‘깜빡이는 해안, 상상하는 바다’이다. 인류의 난개발로 위기에 처한 바다를 다양한 미술 작품으로 구현한다. 일광해수욕장 동쪽에서 서쪽 끝까지 약 1km 구간에 전 세계 20개국의 31개 팀이 참여한 작품 42점이 전시되고 있다. 개막 첫날인 이날 관광객들은 작품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며 즐거워했다. 150여 개의 대나무 기둥을 바다에 설치해 파도가 칠 때마다 대나무에서 피리 소리가 나게 한 사운드 설치작품 ‘바다의 풍문’이 특히 인기였다. 또 인간의 해양 투기 등으로 심해에 기묘한 산호초 숲이 조성된 것을 가정해 만든 ‘수생정원’에도 많은 이가 몰렸다.
주로 해변 등 야외에 작품이 설치됐던 과거와 달리 주택(실험실)과 옛 일광교회, 할매신당 옆 창고 등 실내공간이 전시장으로 활용됐다는 점이 올해 미술제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이날 오후 4시 해수욕장 중앙에서 열린 개회식 무대에 올랐던 김성연 부산비엔날레조직위 집행위원장은 “올해 작품은 예전보다 더 넓은 간격으로 배치됐다. 여유를 두고 해수욕장과 주변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해양 환경오염 등의 심각성 등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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