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명의 시민 구한 남색 셔츠 의인 정영석 씨
차량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여성 끌어 올려 구한 한근수 씨
지난 7월 15일 아침 창밖에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세종시에서 충북 증평군으로 출퇴근하는 정영석 씨(45)는 조금 일찍 집 밖을 나섰다. 증평군 수도사업소 하수도팀장인 그는 증평군 내 보강천이 범람해 침수 사고가 날까 봐 우려하며 오전 8시경 차를 몰고 출발했다.
30분 정도 흘러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를 지나는 중이었다. 갑자기 물이 지하차도 안으로 들어왔다. 차량 타이어 절반 정도가 물에 잠겼다. 정 씨 앞에 있던 다른 차량은 멈춰서 나아가지 못하다가 간신히 붕 하고 움직였다. 정 씨도 따라 가려 했지만 잠깐 사이 타이어 전체가 잠길 정도로 지하차도에 물이 찼다.
정 씨 차량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했다. 곧 차량이 물에 떴다. 정 씨는 창문으로 탈출했다. 차 밖으로 나오니 허리춤까지 물이 찼다.
정 씨는 지하차도 양쪽 끝에 튀어나온 연석으로 올라갔다. 정 씨가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여성 1명과 남성 2명도 각자 차량에서 내려 정 씨 옆에 섰다. 연석 위에 올라가 있던 4명은 빨리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에 게걸음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물살이 세 10m 정도밖에 가지 못했다. 결국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물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키가 작았던 여성은 얼굴이 푹푹 물에 잠기자 “죄송합니다. 가방 좀 잡을게요”라며 정 씨를 잡고 둥둥 떠 있었다.
물은 점점 차올랐다. 정 씨는 수영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차량 지붕 위로 올라갔다. 여성도 수영해 정 씨를 따라갔지만 지붕 위로 올라갈 힘이 없었다. “살려주세요”라는 여성의 외침에 정 씨는 손을 잡고 끌어올렸다. 4명 모두 차량 지붕 위로 대피한 뒤 정 씨는 자신의 옷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찾았다. 119에 신고해 “사람들이 위험하다”고 알렸다. 정 씨가 신고 전화를 한 그 찰나에 지하차도 천장까지 손이 닿을 만큼 물이 가득 차올랐다. 모두 패닉 상태였다.
정 씨는 지난해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했던 침수 사고를 떠올렸다. 당시 목숨을 구한 사람들이 에어포켓을 언급했던 것을 기억한 정 씨는 천장을 훑어봤다. 철제 구조물이 지하차도 끝부분까지 연결된 게 보였다. “여기 있으면 죽으니 나갑시다” 정 씨가 외치니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어요”라며 같이 힘을 냈다.
양손으로 철제 구조물을 잡고 발로 기둥을 짚으며 옆으로 이동했다. 100m쯤 갔을까. 물은 더 차오르고 체력은 떨어졌다. ‘이게 끝인가’라고 생각했다. 정 씨는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렸다. 아내는 3개월 전 갑상샘암 진단을 받아 3일 후 수술받기로 한 상황이었다. ‘일단 기운 한 번 내보자, 가는 데까지 가보자’며 이를 악물었다. 4명이 겨우겨우 이동하던 중 남성 1명은 물살에 휩쓸렸다. 결국 이 남성은 목숨을 잃었다.
3명이 간신히 지하차도 끝에 왔을 때 물은 천장까지 거의 다 찬 상황이었다. 정 씨 뒤를 따라오던 나머지 2명은 철제 구조물에서 천장 와이어로 옮겨 탔다. 정 씨도 옮겨 타려 했지만 본인까지 와이어를 잡으면 끊어질 것 같아 끝까지 철제 구조물을 잡고 탈출했다.
완전히 진이 빠졌다. 몸을 움직일 수 없었고 익사 직전이었다. 꼬르륵꼬르륵하고 물속에 잠기려는 순간 눈을 뜨자 스티로폼이 보였다. 스티로폼을 잡고 둥둥 떠 있다가 지하차도에서 일찍 탈출해 난간 위에 피신해 있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저 좀 잡아주세요”라고 도움을 청했다.
간신히 난간 위로 올라가 숨을 돌린 뒤 물에 떠 있던 여성의 손을 잡았다. 끌어올리려 했지만 둘 다 힘이 없어 꺼내다가 놓치고, 또 꺼내다가 놓쳤다. 정 씨는 “자세를 바꿔서 꺼내 줄 테니 난간 꼭 잡고 있으세요! 포기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외친 뒤 자세를 바꿔 두세 번 시도해 여성을 난간 위로 끌어올렸다.
난간 위에서 1시간 정도 버티던 사람들은 119의 고무보트를 타고 구조됐다. 정 씨는 이후 아내의 수술 일정을 챙기고 아이들을 보살피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죄책감에 시달렸다.
“혹시 제가 차를 끌고 지하차도 안으로 들어가는 걸 보면서 따라 들어와 죽거나 다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어요. 죄책감 때문에 1~2주가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기자와의 통화에서 정 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정 씨는 아직도 밤마다 잠드는 게 쉽지 않다. 두통이 있고 약도 계속 먹는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떠오른다. 다른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로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너무 충격받아 당시 상황이 아예 기억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무서워서 블랙박스 영상을 보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정 씨는 본인 차량 바로 뒤에 있던 1t 트럭 운전자의 생사가 걱정됐다. 경찰에게 물으니 다행히 해당 트럭 운전자는 일찍 탈출했다고 한다. 정 씨는 아주 조금씩 죄책감을 내려놓고 있다.
“제가 살아 돌아와서 느낀 게 ‘행복이라는 건 별것 없구나’였어요. ‘일상에서 아무 일이 없으면 행복한 건데 굳이 돈과 명예를 찾을 필요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분들과도 ‘우리 새 생명 얻은 기분이니 다시 행복하게 잘 살자’고 인사했습니다.”
정 씨가 구해준 여성은 사고 당시 남색 셔츠를 입고 있던 정 씨를 떠올리며 언론 인터뷰에서 정 씨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정 씨는 이렇게 ‘남색 셔츠 의인’이 됐다. 이 여성은 가족과 함께 정 씨를 직접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의인상을 받은 정 씨는 너무 과분하다며 민망해했다.
“아마 그 상황이라면 누구나 저같이 했을 텐데 너무 과분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눈앞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누구나 손을 내밀어서 끄집어내지 않았을까요? 꼭 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도 저 같은 행동을 했을 텐데 뭐 부끄럽게 그런 상을 주시나 싶었습니다.”
정 씨가 사람들을 구할 당시 또 다른 의인도 지하차도에서 위험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 애썼다. 타일 기능공인 한근수 씨(57)는 며칠 전 일하고 마감 못 한 부분이 있어 1t 트럭을 끌고 오송으로 향했다.
지하차도 중간쯤 가자 물이 고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물은 점점 불어났다. 지하차도 밖으로 조금 올라가니 앞에 가던 차들이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멈춘 상태였다. 한 씨의 트럭도 그곳에서 멈췄다. 옆으로는 버스가 지하차도 밖으로 나오던 중 멈춰버렸다.
한 씨는 재빨리 트럭 문을 열고 중앙분리대로 올라갔다. 이때 옆에 있던 차량에서 여성 1명이 창문을 열고 탈출을 시도했다. 여성은 다른 차량 지붕으로 올라가려 했으나 자꾸 미끄러져 실패했다. “도와주세요!”라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은 한 씨는 여성의 손을 잡아끌어 중앙분리대를 잡을 수 있게 도왔다.
다른 차량에서도 운전자가 밖으로 나오려 했으나 차 문 사이에 발이 끼었다. 이를 본 한 씨는 다가가 차 문을 손으로 잡아당기고, 차량을 발로 밀어 운전자의 발을 빼냈다. 그러나 차 문이 좁게 열려 운전자는 나올 수 없었다. 곧바로 한 씨는 차량 뒷문을 열었다. 약간의 공간이 있었으나 너무 겁을 먹은 운전자는 그대로 경직됐다. 한 씨 손도 운전자에게 닿지 않았다. 결국 한 씨는 현장을 벗어나 터널 바깥쪽으로 향했다.
“차들이 터널 안으로 떠내려갔습니다. 물살이 너무 셌어요. 그때 ‘저분은 죽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분이 자꾸 생각나요. 버스에서도 조그마한 창문을 열고 ‘살려달라’ ‘여기 사람 있다’고 소리쳤지만 그쪽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버스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어 살려달라고 했던 분이 많이 기억나요.”
기자에게 상황을 설명하던 한 씨는 눈시울을 붉히며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의 손에는 탈출하던 과정에서 다친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하지만 심적인 상처가 더 크게 남았다.
“제가 물속에서 힘들었던 것보다 그분들을 도와주지 못한 게 너무 충격이에요. 못 나오고 계신 분을 더 적극적으로 구해드리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제대로 빨리 구해드렸으면 나오셨을 텐데…….”
한 씨도 아직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그는 “겉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도 문득 그때 생각이 난다. 사실 지하차도 쪽을 보기도 싫다”고 토로했다.
의인상을 받았을 때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한 씨는 “‘이걸 받아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 희생된 분들도 계시고 엄청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탈출하려는 사람이 보이는데 절대 무시할 수 없고 누구나 다 도와드리려 했을 거다. 의인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드리며 사건·사고는 항상 있으니 더 좋은 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씨가 구해준 여성은 경찰을 통해 한 씨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여성은 한 씨에게 전화로 고맙다고 전한 뒤 직접 만나서도 선물을 건네며 감사함을 표했다.
한 씨는 정신적으로 힘든 것뿐 아니라 생계의 어려움도 겪고 있다. 그는 “차를 잃었고, 차 안에 있던 공구도 다 못 쓰게 됐다. 물기를 말리고 닦으면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망가졌더라. 일을 하려면 새로 구입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한 씨는 오송 지하차도 피해자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더 상처받았다고 한다.
“관련 기사들을 보면 좋지 않은 댓글도 보이는데 그런 댓글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잘못을 해서 희생당한 게 아니라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이고, 아직도 힘들어하는데 그런 것으로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도 아닌데 좋지 않게 보는 시선에 마음이 아픕니다.”
오송 지하차도는 당시 인근 미호강 제방 붕괴로 침수됐다. 이 사고로 사망자 14명과 부상자 11명이 발생했다. 현재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째이지만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감감무소식이다. 피해자들은 이른 시일 내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길 기다린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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