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여성 A 씨는 유산을 경험한 후 우울증을 얻었다. 아이를 잃은 슬픔은 “유산은 나 때문”이라는 죄책감으로 이어졌고, 고통스러운 난임 시술을 다시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에도 시달렸다. A 씨는 지난해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찾아 7차례 상담을 받고 마음돌봄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한결 마음의 짐을 덜었다. 그는 “난임 시술을 계속 받고 있는데, 상담을 받으며 ‘엄마’로서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는 난임 부부들에게 심리 지원을 제공하는 기관으로 2018년 국립중앙의료원 산하에 설립됐다. 난임 시술이 최근 5년 새 48% 급증하는 등 난임 부부가 늘면서 센터를 찾는 발길도 이 기간 3배 수준으로 늘었다. 하지만 센터 예산은 설립 이후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며 운영난이 심화되고, 상담을 원하는 난임 부부들의 불편이 커지고 있다.
18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중앙의료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8월까지 472명이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에 상담을 요청했다. 이 추세대로면 연말이 되면 신청자 수가 700명 안팎이 될 전망이다. 첫해 267명 대비 3배 수준으로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센터를 처음 찾은 사람은 첫 상담까지 평균 53.4일을 대기해야 한다. 2020년까지만 해도 대기 없이 상담받을 수 있었다. 원인은 예산 부족에 있다. 정원이 10명인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에 올해 배정된 예산은 5억7600만 원이다. 5년 전 설립된 후 5억6700만 원으로 동결되다 올해 고작 900만 원 올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요가 폭증함에도 상담 인력을 늘릴 수가 없다. 상담사 한 명이 매달 맡는 상담 서비스 건수가 2018년 32.9건에서 올해 123.8건으로 급증했고, 장기간 대기를 피할 길이 없어졌다.
가파른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예산 동결은 사실상 삭감과 같다. 직원들의 연차가 높아지면서 인력을 새로 뽑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인건비 부담이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그 결과 사업비, 운영비가 삭감되고 있다. 센터 개소 이후 사업비는 1억6870만 원에서 2980만 원으로, 6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운영비도 4640만 원에서 1781만 원으로 감축됐다. 센터 관계자는 “‘힐링 캠프’나 ‘숲 치유 프로그램’ 등 참여형 프로그램은 참여자들의 호응도 좋았고 원하는 상담자도 많은데, 예산 부족으로 충분히 운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중앙 센터 외에도 7곳의 권역별 난임·우울증상담센터를 열어 운영하고 있다. 이들 역시 개소 이후 예산이 한 번도 인상된 적 없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권역별 센터 7곳 중 4곳이 수도권에 쏠려 있어 비수도권 난임 부부의 접근성은 더욱 열악하다.
담당 부처인 복지부는 이들 센터에 대한 예산 증액을 요청하고 있지만 번번이 재정 당국 차원에서 삭감되고 있다. 강선우 의원은 “난임 진단을 받은 사람 중 60%는 고립 및 우울감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며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분들께 임상적 시술을 넘어 충분한 정서적 지원도 함께 이뤄질 수 있도록 예산과 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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