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는 대전 갈마지구대의 밤
본보 기자, 지구대 야간근무 동행… 유흥업소-원룸 많아 신고 잦은 편
마약 정황 발견하거나 음주 시비 등 총 12시간 근무 중 38번이나 출동
인수인계 거치면 퇴근 시간 훌쩍
대전 둔산경찰서 갈마지구대는 서구 갈마동과 월평동, 둔산동 일부를 맡고 있다. 유흥업소와 원룸 건물이 많아 대전 대표 지구대로 꼽힌다. 지난해 출동 건수는 1만6628건, 하루 평균 45.5건이다. 21일 경찰의 날을 앞두고 기자는 16일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지구대 야간근무자 25명과 함께 순찰차를 탔다.
● 마약 범죄 정황 눈앞에 두고
오전 4시 20분경 월평동에 있는 아파트 6층 가정집. 폭행 신고가 들어온 곳이다. 갈마지구대 소속 경찰관 4명이 도착했다. 현관문 사이로 날카로운 여성 비명이 새어 나왔다. “경찰관입니다”라는 말에 속옷만 입은 20대 남성 A 씨가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그는 다짜고짜 “대박이네. 마약 안 했다고요”라며 현관문을 발로 걷어찼다. 마약 얘기는 A 씨가 경찰을 보자 스스로 먼저 꺼낸 말이다. 욕설과 혼잣말을 연거푸 중얼거리기도 했다. 20대 여자친구는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안방에 있었다. 정강이와 턱이 까져 벌겋게 됐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남자친구가 술을 많이 마셨다”고 말했다. 경찰은 거실 식탁 근처에 있던 투명 봉지와 빨대에 주목했다. 봉지 안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가루가 있었다. A 씨는 “친구들과 장난으로 넣어 놓은 밀가루다. 가져가려면 영장 갖고 와라”라고 소리 질렀다. 폭행 신고는 마약 의심 사건으로 번졌다. 남녀 모두 마약 간이시약 검사를 거부했다.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를 댔다. 둔산서 형사팀과 과학수사대, 추가 지원까지 10명 넘는 경찰이 모였다. A 씨 부모도 왔다. 경찰은 “흰 가루 성분을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임의제출을 거부했다. 임의제출은 본인이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 A 씨 부모는 “내 자식을 지켜야겠다. 집에서 나가 달라”고 했다. 1시간 넘게 실랑이가 이어졌다. 결국 형사들은 오늘 정황을 토대로 영장 신청 절차를 밟기로 했다. 경찰은 하얀 가루가 담긴 봉투를 가져 나오지 못하고 철수했다.
● 허무맹랑한 신고일지라도
지구대 출동 지령 단말기에서 ‘딩동댕’ 알림음이 울렸다. 오후 11시 36분경이다. “팔 없는 남성이 성폭행하려고 해서 그에게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는 내용이다. 다급한 내용에 김원일 경위와 임현진 순경은 화장실도 못 가고 다시 순찰차에 올랐다. 순찰차는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는 43세 여성 B 씨가 했다. 그는 갈마동 원룸 건물 지하에 살았다. “팔 없는 남성이 순간 이동해서 나를 덮치려고 한다. 불법 촬영물로 나를 협박한다”는 말을 쏟아냈다. 임 순경은 손전등을 켜고 집 안 곳곳을 살폈다. 집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수십 번 말해 안심시킨 뒤 자정이 다 돼서 철수했다. 이 여성은 ‘상습 신고자’다. 이날 하루에만 84번 같은 내용으로 112에 신고했다. 허무맹랑한 신고가 계속돼도 혹시 모를 한 건을 대비해 출동한다. 임 순경은 “같은 시간대에 다른 신고가 겹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라며 애써 웃었다. 차가운 긴장감이 꽉 찬 지구대에 온기가 돈 건 오전 1시쯤이다. 야식 시간이다. 이날 야식은 사발면이었다. 야식비는 한 사람당 4000원씩 지원된다. 김덕중 경감은 “피자나 햄버거, 치킨이 인기 만점이다. 출동이 잦아 직원들이 엉덩이 붙이고 먹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새벽으로 갈수록 술 관련 신고가 잦았다. 시비나 고성방가 등이다. 왕복 4차선 도로에서 빗자루를 쥔 채 소리를 지르던 노인은 경찰에게 “내가 뭘 잘못했냐. 내 몸에 손대지 말라”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전날 오후 6시 30분에 시작된 근무는 12시간 뒤에 끝난다. 이날 지구대 근무자들은 총 38번 출동했다. 근무 시간 후에도 총기 반납, 사건 인수인계 등을 마치면 퇴근 시간은 오전 7시를 넘기기 일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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