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유족 동료지원활동가 장준하 씨
“다른 유족들의 한마디가 큰 위로가 돼…같은 아픔 겪는 유족들 돕고 싶어”
자살 예방강사·‘그루터기’ 자조모임 리더로 활동
“자조모임서 경험 나누며 혼자인 분들에게 손 내밀고 싶어…”
“2018년 5월. 나의 마음은 차가운 겨울이 되었습니다. 나날이 날씨가 따뜻해지고 사람들의 활동이 많아지는 계절이지만 나는 여전히 한기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임상심리사 장준하 씨(46)는 5년 전 봄. 동생의 장례식을 마치고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추위에 떨어야 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동생을 떠나보낸 장 씨는 몸에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박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던 2018년 7월 여름. 장 씨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상담을 받으며 ‘자살 유가족의 개입방안’ 이라는 강연에 처음으로 초청되었다. 그날 한 교수님을 만났고 장 씨는 강의실에서 순간 벼락을 맞은 기분이었다. 장 씨가 “자살 유가족으로서 목소리를 내야겠다”라고 마음먹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햇볕이 뜨거웠던 그날처럼 장 씨의 마음에도 따뜻함이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강연에서는 한 의과 대학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이 일본의 ‘라이프링크’를 예로 들며, 한 사례를 얘기했다. 일본에서 자살유자녀 수기집 발간으로 시작된 자살유가족의 목소리가 법을 개정하고, 자살 예방 예산을 편성하게끔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90년대 말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였던 일본이 4위로 내려갔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자살 유가족이 당사자로서 직접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자살 사별자 리더 양성 교육 프로그램이 소개되면서 강연이 마무리되었다.
한 교수님이 강연 도중 장 씨의 옆자리에 앉더니 명함을 건넸다. 교수는 장 씨의 등을 따뜻하게 두드리며 “저도 자살 유가족입니다”라고 했다. 장 씨가 ‘자살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에 도전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살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는 같은 아픔을 겪은 ‘동료’만 활동가 자격이 주어진다. 선발된 동료지원 활동가는 다른 환자의 회복을 지원한다.
살기 위해 찾아갔던 자조모임…다른 이들 상처 치유하는 리더로
2018년 이전에 장 씨는 본인도 자살 고위험군에 속해 있었다. 2011년 장 씨는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고 걸어 다니기 힘들 정도로 몸도 좋지 않아 우울감이 커졌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면서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다. 매주 일요일 교회 사람들과 일상을 나누며 위로를 받기도 했다. 장 씨는 “매주 만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게 큰 힘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점차 신용회복도 했고, 자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되는 역할이 하고 싶어 2018년 3월 상담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런데 5월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됐다. 힘든 시기를 극복했지만 동생이 갑작스레 떠나면서 장 씨는 두 달간 우울증에 시달렸다.
당시 장 씨에게 가장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자조모임’이었다. 자조모임이란 공통의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지지함으로써 긍정적인 변화를 스스로 도모하는 모임이다. 장 씨가 참여하는 자살 유족 자조모임은 가족을 먼저 떠나보낸 유족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공유하고 치유하는 모임이다.
2019년 장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자조모임’에 참여했다. 그 모임에서 장 씨는 자살 유족들로부터 큰 위로를 받았다. 그는 “어떻게 보면 살려고 간 것이다. 그런데 직업의식이 있어서 열심히 다니기도 했고 위로를 많이 받았다”라고 했다. 장 씨는 자살 유가족들을 위한 자조모임이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두려워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말했다.
장 씨는 현재 자살 유족 동료지원 활동가 2기로서 ‘그루터기’ 자조모임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3~4명의 유족이 참여 중이다. 유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끔 이끌고 마지막에 보고서까지 쓰는 것이 장 씨의 역할이다. 모임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른 유족들이 자기 경험과 아픔을 잘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장 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동생의 시신을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이다. 동생이 살던 오피스텔 문을 부수고 경찰이 안내한 곳으로 들어가 장 씨가 동생을 처음으로 만졌을 때는 너무 차가웠다. 몇 달 내내 그 차가움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지인들로부터 위로를 받기도 했지만, 그 분들의 침묵이 지속되기도 했다. 비슷한 경험이 없어 어떤 위로를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던 것이다. 장 씨는 ‘괜히 얘기했다’라는 생각에 혼자 속상해한 적도 많았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나누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장 씨는 “그때 가장 힘이 돼준 분들은 바로 자조모임에 있던 분들이었다”라며 “그 전에 다른 분들은 큰 슬픔을 위로하는 방법을 모르시기도 해서 말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 힘들겠군요”…다른 유족의 한마디
장 씨는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을 자조모임에 있던 분들과 나누면서 내면의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었다. 일반 사람들에게 나누기 힘든 부분들을 모임에서 나눴을 때는 “나도 그랬다”와 같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장 씨에게 큰 힘이 됐다. 그중에서 가장 힘이 됐던 말은 “참 힘들겠군요”라는 단순한 한마디였다. 일반 사람들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장 씨는 자조모임에 있던 한 어머니로부터 그 말을 처음 들었다. 위로의 말을 건넸던 그 분은 실제로 딸을 잃고 한동안 심적으로 힘드신 분이었다. 장 씨는 “그분이 그 말을 해주셨을 때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한 달 뒤였다”라며 “‘저도 한 달 됐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진정성 있는 위로를 느꼈고 나에게 크게 와닿았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자신의 아픔과 고통을 ‘말’로 함으로써 치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안전한 사람들, 공간, 비밀이 보장되는 곳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그는 “자조모임은 어떤 얘기를 해도 위로를 해주고 담담하게 들어줄 수 있는 곳”이라면서도 “그 자리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도움이 되는 거 같다”라고 말했다.
장 씨는 동료지원 활동가로서 자조모임을 진행할 때 힘든 점이 없냐는 물음에 “다른 유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회복했던 상처가 다시 들춰지기도 한다”라며 “기억이 연상돼서 힘들 때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장 씨는 “하지만 1박2일 캠프나 유족들끼리 모여서 힐링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이 있다. 치유되는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 그는 “내가 무언가 역할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다 보니 지속할 수 있다고 전했다.
“자조모임 통해 다른 유족들도 일상 회복했으면…”
장 씨는 본인이 힘들었던 시기처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 분들을 만난다면 자조모임뿐만이 아니라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건강의학과도 좋고 다양한 복지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주민 센터를 찾아가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 씨는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과 전문가들이 많다”라며 “‘살려고’ 하는 사람 곁에는 ‘살리려고’하는 사람들이 있어 함께 할 사람들이 있다”라며 “자살 위기, 생의 위기에 꼭 도움을 청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장 씨는 유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함으로써 사회와 단절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조모임뿐만이 아닌 1:1 개인 애도 상담 등 유족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자살 유족 전담 인력이 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에 배치되어 있다고 장 씨는 설명했다. 그는 “유족 분들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참여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자조모임을 통해 일상을 회복했으면 한다”고 간절히 소망했다.
장 씨가 가진 삶의 가치관은 ‘사람과 함께 살며 혼자인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이웃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장 씨는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현재 임상심리사로 일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자살 예방 강사, 자살유족 동료지원 활동가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다. 직업 특성상 응급출동을 하거나 자실 시도를 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할 때도 빈번하다. 그럼에도 장 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가졌거나 힘든 일로 혼자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는 것이다.
“지오디 노래 중에 ‘촛불 하나’라는 노래가 있어요. 노래 가사처럼 지치고 힘든 분들의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살려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살리려는 사람과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자살 문제는 곧 해결될 수 있어요.”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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