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초부터 정원제한 규제 풀기로
의사-간호사 등 모든 의료진 늘려
‘상경 진료-분만’ 등 의료공백 해소
필수의료 강화를 위해 19일 국립대병원 규제 완화 방안을 발표한 정부가 중증, 응급, 신생아와 분만 분야를 특정해 최우선적으로 인력 규제를 풀 계획이다. 생사(生死)를 헤매는 환자가 ‘표류’하다가 제때 치료를 못 받거나 지방에 사는 임신부, 신생아가 서울까지 ‘상경 분만’ ‘상경 치료’를 하러 오는 문제를 풀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20일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등 정부는 전날(19일) 발표한 지역·필수의료 공백의 후속 조치로 이 같은 내용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립대병원은 정해진 한도 안에서만 직원 인건비를 줄 수 있는 ‘총액 인건비’와 ‘정원 제한’이 모두 적용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 인력 확충은 필요조건”이라며 19일 규제 완화를 지시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이 같은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최근 충북 청주시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호흡 곤란 증상을 보였다. 하지만 지역에서 유일하게 신생아 중환자실을 갖춘 충북대병원은 병상이 포화 상태였다. 병상 25개를 모두 채우고도 베지넷(아기 바구니) 2개를 추가로 배치해야 할 정도로 위중한 신생아가 많았다. 결국 이 아기는 50km 떨어진 대전의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윤신애 충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신생아 중환자실을 지키는 의사가 나를 포함해 2명뿐이라 365일 맞당직을 선다. 몸이 2개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국립대병원 중 총액 인건비, 정원 제한에 예외를 둔 곳은 어린이병원뿐이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 중증외상과 응급, 분만, 신생아 치료 등으로 이를 확대할 방침이다.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모든 의료인력에도 공통적으로 적용한다. 인건비를 높여 실력 있는 양질의 의료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부 관계자는 “당장 환자 생명에 직결된 분야는 서둘러 인력을 확충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언한 의대 정원 확대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지역의료 혁신 이행을 위한 관계장관 회의’를 열고 “지금 (의대 정원을) 증원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더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관계부처는 철저히 계획하고 추진해 달라”고 주문했다.
‘붕괴 위기’ 지방 응급-분만 인력 확충… 의사-간호사 모두 늘린다
[필수의료 개혁] 국립대병원 정원제한 규제 개선 지방 필수의료 인력 유출 심각 소아과 의사 8명중 4명 그만두기도
정부가 국립대병원 중증외상, 응급 신생아, 분만 분야의 의사 정원, 인건비 규제를 먼저 풀 계획인 가운데 의사뿐만 아니라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 의사 외 의료 인력들도 여기에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급한 분야부터 인력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0일 ‘지역 및 필수의료 혁신 이행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의사가 없어서 병원이 문을 닫고, 응급실을 제때 가지 못해 생명을 잃기도 하며, 지방에 사시는 환자분들이 서울까지 올라와 치료를 받는다”며 “무엇보다 의료 인력의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인력 유출 심한 중증응급부터 규제 완화
정부가 전날(19일) ‘지역·필수의료 공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지만, 현실적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의대 정원 확대는 규모와 속도, 방식을 두고 각계의 견해차가 크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인력과 장비 규제도 여러 부처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해소에 적잖은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립대병원은 현행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상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직원 인건비의 총액과 연간 인상률(올해 기준 1.7%)이 정해져 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 떠난 동료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매일 밤 당직을 서도 월급은 그대로다. 병원이 의사를 채용할 때 교수직을 제안하고 싶어도, 전임교원 정원은 행정안전부의 심사 대상이다.
최근 비수도권의 한 국립대병원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8명 중 4명이 연달아 사표를 냈다. 인근에서 소아 응급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이곳뿐이었기 때문에 의사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면 말 그대로 ‘의료 붕괴’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병원장이 의사들에게 사정하다시피 요청해 사표를 거두게 했지만 병원 관계자는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정부는 당장 중증 응급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떠도는 ‘표류’부터 해결하기 위해 해당 분야 인력 규제부터 시범적으로 풀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심뇌혈관센터 등 ‘골든타임’이 짧은 응급환자를 주로 치료하는 부서는 격무에 시달리기 때문에 인력 유출이 심하다”라며 “응급 분야부터 인력을 더 채용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주고, 그 효과를 평가해 다른 분야로 넓히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말했다.
● 국고 지원, 낡은 의료장비 교체부터
정부는 국립대병원 시설과 장비에 국고를 지원할 때도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가의 의료기기 등 필수의료와 직결된 분야부터 먼저 투자하기로 했다. 현재 국립대병원 의료 현장에서는 도입한 지 18년 돼 시술 도중 작동이 멈추는 심혈관 조영기로 환자를 진료하거나, 고압산소치료기가 없어서 응급 화상 환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등 아찔한 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전국 국립대병원 17곳의 진료 적자는 지난해 4007억 원이었다. 환자를 진료해서 번 돈만으로는 새 장비를 구할 수 없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현재는 시설과 장비에 대한 국고 지원 비율이 25%로 묶여 있다. 한 대에 10억 원이 넘는 의료기기를 사기가 어려운 구조다. 올해 국립대병원에 배정된 시설 장비 예산 788억 원 가운데 상당액이 의료 장비가 아닌 주차장 개선 공사 등에 쓰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여당은 ‘의료 TF’ 가동- 야당은 “무책임, 무능”
정치권에서는 전날 발표된 의료 대책을 놓고 여야가 다른 행보를 보였다. 여당은 후속 조치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야당은 의대 정원 확대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며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20일 ‘지역·필수의료 혁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정부의 후속 조치를 뒷받침하기로 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역 필수의료 혁신을 핵심 민생정책으로 선정해 당이 지닌 모든 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TF는 유의동 정책위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국회 관련 상임위 여당 간사들을 비롯해 의료인부터 일반 시민까지 참여해 제도 개선 등을 논의하는 방향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 확대의 구체적 규모 등을 발표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무책임하고 무능력하다”고 비판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의 구체적인 규모는 물론이고 제대로 된 로드맵조차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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