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주정부가 응급환자 전원(轉院)도 조율… 10년 전 처방-수술 기록까지 실시간 공유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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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표류’ 해법, 해외에서 찾다]

10일 오전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시에서 서쪽으로 80km 떨어진 한 병원에 옆구리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가 방문했다.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 결과 소변이 배출되지 않아 양쪽 콩팥이 커진 상태였다. 서둘러 요관을 뚫지 않으면 콩팥이 제 기능을 못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 병원엔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전원(轉院·병원을 옮김)해야 했다.

10일 오전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시 록키뷰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에디 랭 캘거리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가 다른 병원으로부터 옮겨오기로 한 환자의 초음파 검사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앨버타주에선 병원간 응급환자 전원을 조율해주는 전담조직이 24시간 운영될 뿐 아니라, 환자의 진료 기록을 서로 다른 병원 의료진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어서 더 빠르고 정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캘거리=특별취재팀


● 캐나다선 30분 만에 ‘전원 수용’

만약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이렇게 전개됐을 가능성이 크다.

  • 의료진이 다른 병원 응급실에 전화해 환자 상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로 설명한다.
  • 비뇨의학과 전문의에게 물어보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 몇 분 후,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이 온다. 다른 병원에 다시 전화한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동안 환자의 골든타임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위중하고 치료하기 까다로운 환자일수록 이런 상황에 부닥칠 공산이 크다. 응급환자 전원을 조율하는 시스템이 부실하기 때문이다.

강경국 여수전남병원 응급의학과장이 직접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를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리고 있다. 국내에선 응급실 빈 병상뿐 아니라 중환자실 병상과 치료 의사까지 있는 병원을 찾으려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봐야 한다. 동아일보DB
강경국 여수전남병원 응급의학과장이 직접 치료하기 어려운 환자를 받아줄 다른 병원을 찾아 전화를 돌리고 있다. 국내에선 응급실 빈 병상뿐 아니라 중환자실 병상과 치료 의사까지 있는 병원을 찾으려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봐야 한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0월 다리가 부러진 뒤 응급실에 실려갔지만 병원 23곳에서 혈관을 이어붙이는 수술을 거절 당한 박종열 씨(40)가 그랬다. 올 1월 목숨이 위태한 수준의 산혈증으로 진단되고도 병원을 옮기기까지 3시간 30분이 걸린 장부귀 씨(74)가 그랬다.

하지만 이날 캐나다에선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9시 37분, 의료진이 앨버타주 보건성 산하 ‘전원·의료지도센터(RAAPID)’에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 9시 38분, RAAPID 직원은 앨버타주 내 병원의 빈 병상과 의료진 당직 근무 현황이 표시된 상황판 정보를 토대로 캘거리시 록키뷰종합병원을 선정했다.
  • 9시 39분, 록키뷰종합병원 당직 비뇨의학과 전문의에게 수용 요청을 보냈다.
  • 10시 6분, 비뇨의학과 전문의가 환자 정보 공유 프로그램인 ‘커넥트케어’를 통해 환자의 과거 수술 및 투약 기록을 확인한 뒤 RAAPID에 ‘환자를 받을 수 있다’고 응답했다.

캐나다 앨버타주에서는 환자 정보 공유 프로그램인 ‘커넥트케어’를 통해 서로 다른 병원 의료진도 응급환자의 진료 기록을 실시간으로 공유할 수 있다. 캘거리=특별취재팀

전원 요청부터 수용 결정까지 30분도 걸리지 않은 것. 에디 랭 캘거리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사들이 RAAPID에서 오는 연락은 최우선적으로 받는다”고 말했다.

● 환자 정보 실시간 공유 조직-프로그램이 비결
앨버타주에서 응급환자를 이처럼 신속하게 전원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유는 2009년 도입된 RAAPID의 존재다. 의사와 간호사, 응급구조사로 구성된 수십 명의 전문팀이 지역 내 모든 병원의 병상과 의료진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환자를 치료할 최적의 의료기관을 찾는다.

특히 환자의 최종 치료를 맡을 전문의에게 직접 연락하기 때문에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예컨대 환자가 심장질환이 의심되면 응급실을 거치지 않고 곧장 심장내과로 직접 연락한다. 마이클 불러드 앨버타대 의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이 치료하기 까다로운 응급환자도 일단 수용할 수 있는 건 ‘우리가 최선을 다해도 안 되면 RAAPID가 전원을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덕분”이라고 말했다.

10일 캐나다 앨버타주 캘거리 응급관제센터. 벽을 가득 채운 모니터에 인근 모든 대형병원의 빈 병상과 근무 중인의료진 현황이 표시돼 있었다. 앨버타주는 이같은 정보를 환자 이송뿐 아니라 전원 때도 전원·의료지도센터(RAAPID)에서 똑같이 활용한다. 캘거리=특별취재팀

두 번째는 커넥트케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병원이나 부서가 달라도 모든 의료진이 환자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대화할 수 있다. 환자의 심박수와 혈압 등 활력 징후뿐 아니라 초음파 검사 결과 등 영상 자료나 10년 전 수술 기록까지도 볼 수 있다. 1999년 도입한 ‘넷케어’를 2021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의식 없는 응급환자가 무슨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의료진이 알 길이 없어서 보호자가 집으로 달려가 약 봉투를 사진으로 찍어서 보내야 하는 한국과 대조된다.

커넥트케어 도입에 참여한 크리스 그랜트 캘거리대 의대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분초를 다투는 환자 상태를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화면에 띄울 수 있고 과거 병력도 볼 수 있어서 더 빠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10일 캐나다 앨버타주 풋힐종합병원에서 만난 크리스 그랜트 캘거리대 의대 중환자의학과 교수가 커넥트케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캘거리=특별취재팀
10일 캐나다 앨버타주 풋힐종합병원에서 만난 크리스 그랜트 캘거리대 의대 중환자의학과 교수가 커넥트케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캘거리=특별취재팀

민감한 의료 정보가 공유되는 데 대한 우려는 없었을까. 그랜트 교수는 “환자 진료에 직접 참여하지 않는 의료진이 기록에 접근하면 자동으로 경고 메시지가 뜨고, 24시간 내부 보안팀이 감시한다”고 말했다.

● 한국에도 비슷한 시스템 있지만 인력 부족과 법적 허점이 걸림돌
한국에도 이미 RAAPID와 커넥트케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조직과 프로그램이 있다. ‘중앙응급의료상황실’과 ‘응급전원협진망’이다. 그런데 RAAPID와 비슷한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은 24시간 상주하는 직원이 4~6명에 불과해 늘 일손 부족에 허덕인다. 전원 문의시 최종 치료 전문의가 아닌 응급실에 전화해야 하는 것도 약점이다.

커넥트케어에 해당하는 응급전원협진망은 개인정보 보호 조항 탓에 병원 의무기록과 연동되지 않고, 환자의 상태와 투약, 처치 내용을 의료진이 일일이 다시 입력해야 한다. 이 때문에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지난해엔 코로나19 환자를 제외한 응급환자 120명에게만 사용됐다.

※ 이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캐나다#전원센터#raapid#커넥트케어#기록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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