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생명을 잃었다. 상태가 심각해 구급차에 올랐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2008년 10월 일본 도쿄에서 뇌출혈로 숨진 30대 임산부와 2010년 11월 대구에서 장중첩증으로 숨진 A 양(4) 얘기다. 사건 이후 양국 정부는 응급의료 체계를 뜯어고치겠다고 밝혔다.
10여 년 뒤. 일본에서는 환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거리를 떠도는 ‘표류’가 사라졌다. 환자가 표류하면 인근 모든 병원에 경보를 울리는 ‘마못테(まもって·지켜줘) 네트워크’와 구급대원 단말기에 이송 가능 병원을 자동으로 띄워주는 ‘오리온 시스템’을 2008년, 2013년 각각 도입한 덕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올 8월부터 10월까지 일본을 포함한 5개국 의료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고 ‘환자 ‘표류’ 해법, 해외에서 찾다’ 시리즈(25일자 A1·3면 등)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한국은 어땠을까. 정부는 2010년 A 양의 수용을 거부했던 병원에 행정처분을 내리는 한편 응급실마다 일일이 전화하지 않아도 치료 병원을 신속히 찾을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도 ‘마못테 네트워크’와 유사한 제도를 추진했던 것. 하지만 몇 달 후 관련 대책은 사라졌고 행정처분마저 철회됐다. 소방청과 보건복지부가 관할을 두고 입씨름하고, 의료계의 반발에 정부가 물러선 탓이었다.
그 후로 수많은 환자가 길거리를 떠돌다가 희생됐지만 정부와 의료계의 대처는 한결같았다. 소방본부가 환자의 응급도를 구분해 꼭 필요한 환자만 대형병원에 보내는 독일이나 응급환자 전원(轉院)을 정부가 조율하는 캐나다의 시스템도 우리 정부가 여러 차례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던 내용이다. 그러나 그때뿐, 대책은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
그 결과 올 3월 대구에서 발생한 B 양(17) ‘표류’ 사망은 12년 전 A 양 사건과 판박이였다. 이번에도 구급대원은 병원마다 전화를 거느라 골든타임을 날렸다. A 양을 받아주지 않았던 병원은 B 양 사건 때도 수용을 거부해 행정처분을 받았다.
개혁에는 진통이 따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해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잊어선 안 된다. 환자의 생명. 응급환자가 허무하게 숨을 거둘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정부 부처와 병원들은 과연 환자의 생명을 최우선에 두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그걸 잊지 않고 대의를 위해 뜻을 모았기에 대책을 관철할 수 있었다.
대구시와 대구소방안전본부, 복지부는 B 양 사건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협의체를 꾸리고 ‘한국판 마못테 네트워크’의 시범사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부처 간 칸막이와 병원들의 반발 탓에 좌초될 위기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기우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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