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치료 주사를 맞은 뒤 아파트 7층에서 뛰어내려 하반신이 마비된 고등학생에게 부작용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은 병원이 배상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이 나왔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2부(부장판사 주채광)는 지난 11일 김모 씨(21)와 부모가 경기 시흥시의 A 병원과 소속 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김 씨에게 5억7000여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김 씨는 16세이던 2018년 12월 22일 저녁 전신 근육통과 고열 증상으로 A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A형 독감 양성 반응이 확인되자 A 병원 의료진은 김 씨에게 독감 치료 주사제인 페라미플루를 접종했다.
증상이 호전된 김 씨는 약 한 시간 뒤 경구약을 처방받고 귀가했다. 의료진으로부터 경구약과 페라미플루 주사 부작용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
김 씨는 이튿날 오후 거주하던 아파트 7층 부엌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이 사고로 김 씨는 허리·등뼈 등의 골절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받았으나 현재까지 하반신 마비 상태다. 사고 당시 부모는 외출해 집을 비운 상태였다.
김 씨와 부모는 사고 원인이 정신이상과 이상행동을 일으키는 페라미플루 부작용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병원 측이 투약 당시 이 같은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김 씨는 사고와 관련 “엎드려 자고 있었는데 떨어지는 꿈을 꾸고 나니 병원이었다”고 진술했다. 해당 사고 구급활동일지에도 김 씨는 추락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무의식 상태라고 쓰였다.
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병원 측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페라미플루 부작용으로 정신·신경 증상이 발생할 수 있고, 이런 부작용은 특히 소아·청소년들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A 병원은) 김 씨와 보호자에게 부작용 발생 가능성, 투약 후 2일간은 김 씨 혼자 있도록 해서는 안 되고 행동을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는 주의사항과 요양 요법에 대한 지도·설명의무를 부담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씨가 돌아갈 때 (A 병원이) 지도·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았고, 김 씨가 집에 혼자 머무는 동안 사고가 발생했기에 의무 위반과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김 씨의 일실소득(잃어버린 장래의 소득)과 치료비 등을 고려해 청구된 6억2900여만 원이 아닌 5억7000여만 원으로 손해배상액을 정했다. 또 부모에게도 위자료 등으로 총 700만 원을 배상하도록 했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와 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면서도 법원 판결에 유감을 드러냈다. 의협은 “학계 보고 등에 따르면 해당 환자의 신경 이상 증세가 독감 증상인지, 치료 주사제의 부작용인지 불명확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의가 아닌 오진이나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 등에 엄격한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의료행위의 본질과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이런 판결이 반복되면 의료진의 소신 있는 진료를 위축시키고,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가속해 국민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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