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거주하는 대학생 유모씨(23)는 ‘마음 검진’을 한다는 생각으로 1년에 한 차례 주거지 인근 정신건강의학 병원을 찾는다. 유씨는 2년 전 우울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 올해는 상반기에 한 차례만 병원에서 진료받았으나 진단 직후 매주 병원을 방문했다고 한다.
유씨는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다 보니 생활 습관이 개선돼 자존감이 올라가고 스스로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생겼다”며 “앞으로 상태가 악화하거나 나도 모르는 사이 정신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정기적으로 병원을 방문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우울증 등 신경정신 질환을 흔히 ‘마음의 병’이라고 한다. 과거엔 신경정신 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해 ‘마음의 병’ 증세가 심해도 병원 진료를 기피했다. 그러다 최근 몇 년새 ‘감기’를 치료하듯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3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요즘 MZ세대(1980년~2004년 출생자)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평소 관리를 해야 재발을 막듯 주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나 상담 센터를 찾아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신경정신 질환 판정을 받거나 증상이 뚜렷한 경우뿐 아니라 건강관리의 하나로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는 셈이다.
◇“SNS 검색해 병원 목록 작성”
서울 은평구에 사는 직장인 임모씨(26)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는 올해 1월부터 한 달에 두 차례 심리 상담 센터를 방문하고 있다. 회당 비용이 5만원이라 부담은 되지만 ‘헬스’나 ‘필라스테스’처럼 건강을 위한 자기 투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임씨는 “심리 상태 진단뿐 아니라 목욕과 식단 등 건강한 생활 습관과 관련한 조언을 해줘 일상에서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20대 취업준비생 김모씨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살펴 집 인근 신경정신과 병원 2~3곳을 추렸다. 우울함과 의욕 저하를 느꼈던 그는 자신의 증상이 정신건강과 관련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성향에 맞는 키워드로 SNS를 검색한 후 방문할 병원 목록을 만들었다”며 “취업과 학업 문제 등 자존감이 떨어지는 이야기를 해야 할 수 있으니 부드러운 어조와 돌려 말하기 방식으로 상담하는 병원들이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 SNS에서 ‘추천 병원’으로 언급되는 서울 일대 신경 정신과 10여 곳을 직접 문의한 결과 초진 기준으로 두 달 이상 예약이 가득 찬 곳도 있었다. 일부 병원에선 ‘노쇼’ 방지를 위해 진료비를 선입금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신건강 악화 전 미리 치료하려는 건 긍정적”
이 같은 현상은 통계로도 확인된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민건강보험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청년들이 쓰는 전체 진료비 중 정신건강 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해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대의 경우 전체 진료비 중 정신 치료에 쓰는 비중이 2023년 상반기 기준 8.1%를 기록했다. 이는 2018년 5.7%에서 꾸준히 증가한 수치로, 치매 등으로 인해 전체 진료비 중 정신 치료에 들이는 비용이 높은 80대 이상(12.9%)을 제외하곤 가장 높은 수치다.
2023년 상반기 기준 정신과 진료비의 평균 지출 비율은 4.5%로, 10대(6.2%)와 30대(4.9%)만이 전연령대에서 평균보다 높은 수치를 유지하고 있다.
다만 정신질환 치료비용은 각종 심리 검사와 상담 등이 포함될 시 많게는 10만~20만원 선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자체 무료 심리 상담 등을 통해 마음 관리를 시도하는 청년들의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서울시가 만 19세 이상 40세 미만 청년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무료 심리상담 ‘청년마음건강’ 프로그램의 경우 지난해 6500여명에서 올해 1만명으로 지원 규모를 확대했음에도 지원자 수가 모집인원보다 1000명가량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의 한 심리센터 관계자는 “불황 등 경기가 어려워지면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예전엔 중장년 이상이 많았다면 지금은 2030 위주로 고루 퍼지는 추세다. 최근엔 불안과 우울 증세를 이야기하며 신경정신질환에 해당하는지 묻는 전화 상담이 많다”고 설명했다.
전덕인 한림대학교성심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이 나빠지거나 만성화되기 전에 미리 치료하려는 현상은 긍정적”이라면서도 “젊은 나이부터 정신 치료를 받는다는 건 그만큼 외부 변화에 취약하거나 고위험군으로 빠질 위험성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므로 이들에 대한 지속적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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