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만의 습격, 빈대와의 전쟁 현장 40년 전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빈대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기숙사, 찜질방뿐만 아니라 가정집까지 빈대가 출몰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방역에 비상이 걸렸다. 동아일보가 방역업체들의 ‘빈대 퇴치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다리랑 몸통 보이죠? 이게 빈대예요. 한 마리 찾았는데 이게 끝이 아니에요. 여기 스무 마리는 넘게 숨어 있을 겁니다.”
지난달 31일 인천 서구의 한 가정집. 해충방역업체를 운영하는 한호 대표(58)는 이날 오전 9시부터 이 집의 여러 방을 오가며 ‘빈대 찾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곳에 살던 여성은 최근 한 달 동안 빈대로 인한 피해를 견디다 못해 이 업체에 방역을 의뢰했다. 옷가지와 침구류는 물론이고 매트리스까지 바꿨지만 밤새 시달림은 이어졌다고 한다.
파란색 라텍스 장갑과 보호 신발을 착용한 한 대표는 능숙하게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를 걷어내고 매트리스의 가장자리부터 손으로 훑어보며 꼼꼼히 확인했다. 빈대 배변 자국이나 사체 등이 발견되지 않자 매트리스를 통째로 옮기고 침대 틀을 분해했다.
빈대 흔적을 찾기 위해 뭉쳐 있던 먼지 더미까지 일일이 확인하며 약 30분이 흘렀다. 매트리스에 가려져 있던 침대 바닥에서 빈대 유충 사체 하나가 발견됐다. 1mm 남짓한 크기의 사체는 아주 작은 점처럼 보여 언뜻 먼지와 구분하기 힘들었다.
끈질긴 작업 끝에 빈대를 확인한 한 대표는 침구류에 스팀을 분사하기 시작했다. 4L 물통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 스팀기에 연결한 후 ‘작동’ 버튼을 누르자 기계에 담긴 물이 순식간에 끓어올랐다. 약 30cm 길이의 분사기를 통해 커튼 봉과 옷장 틈, 침대 사이 등 좁은 틈까지도 스팀을 분사했다. 의자에 난 작은 구멍에도 분사기를 들이밀었다. 10분 정도 지나자 약 23㎡(약 7평) 넓이의 안방 전체가 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한 대표의 휴대전화는 작업 중에도 쉬지 않고 울렸다. “몸이 계속 간지러운데 혹시 집에 빈대가 있는 게 아니냐” “빈대가 출몰하기 전에 미리 예방할 수 있느냐” 등 대부분 빈대 관련 문의였다. 한 대표는 “빈대 퇴치 작업이 오늘만 5건 예약돼 있다”며 “이번 주 빈대 퇴치 의뢰가 12건 들어왔는데 몇 달 전에 비해 2배로 늘어난 것”이라고 했다.
서울까지 번진 ‘빈대 경보’
최근 국내에서도 ‘빈대 박멸 작업’이 한창이다.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영국 런던 등 해외 주요 도시에서 최근 기승을 부리던 빈대가 국내 곳곳에 출몰하고 있기 때문이다. 9월부터 대구 계명대 신축 기숙사에서 빈대 피해가 이어졌고 지난달 13일에는 인천 서구의 한 찜질방에서 빈대 성충과 유충이 한 마리씩 발견됐다.
서울에서도 빈대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각 자치구에 따르면 올 9월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25개 자치구에서 실제로 빈대가 발견돼 방역 등 조치에 나선 경우가 8건이다. 한 방역업체 관계자는 “서울 경기 인천 가릴 것 없이 수도권 곳곳에서 빈대 퇴치 작업 문의가 쇄도하는 중”이라고 했다. 비상이 걸린 서울시는 3일 숙박시설·목욕장·찜질방 등 다중이용시설 3175곳을 대상으로 점검에 나섰다.
“1시간 넘게 방역하면 속옷까지 땀에 젖어”
동아일보는 지난달 30, 31일 해충방역업체 두 곳과 동행해 빈대 퇴치 현장을 직접 취재했다.
지난달 30일 낮 12시 40분경 경기 안양시의 한 가정집에 방역업체 이기찬 대표(49)와 진영생 팀장(60)이 각각 가로세로 45×60cm 크기의 캐리어를 끌고 도착했다. 캐리어에는 흡착기와 침구 소독청소기, 살충제 살포기 등 다양한 도구가 들어 있었다. 직원들은 흰색 방역복과 고무장갑, 마스크까지 ‘완전 무장’을 마친 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날 작업은 흡착과 소독, 훈연, 살충제 살포 순으로 진행됐다. 진 씨는 먼저 흡입기로 침대에 놓인 베개 2개를 순서대로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베개의 위와 아래, 테두리까지 쓸어내린 후 이불로 이동했다. 완전히 펼친 채 한 번, 두 번 접은 후 다시 한 번. 이어 공간 소독기로 전체적인 살균 작업을 진행했다.
40분가량 흡착과 소독을 통해 베개, 이불, 매트리스, 전기담요까지 모두 빈대 퇴치 작업을 마친 직원들은 창문을 활짝 열고 침대 위에서 피톤치드 훈연기를 작동시켰다. 냄새를 지우고 추가 살균과 소독을 진행하는 차원이다.
이어 싱크대와 수납장 등 비좁은 공간에 살충제를 살포하고 나서야 모든 방역 작업을 마쳤다. 진 팀장은 “방역 작업이 끝나면 속옷까지 다 젖을 정도”라며 “한 번 빈대가 나오면 개인이 방역하기 어려운 만큼 평소에 정기적인 소독 및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방역 비용은 집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한 번에 15만 원 안팎이다.
“피 안 먹어도 최대 6개월 생존”
빈대는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 해충이다. 납작하며, 길이는 1∼6mm. 인간에게 감염병을 옮기지 않지만 물릴 경우 붉은 반점과 심한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전 세계에 서식하는데, 매트리스나 카펫 등 섬유 제품뿐 아니라 서랍과 찬장 틈, 전기 콘센트 안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좁은 틈에 숨어 생활한다.
국내에서 빈대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이후 자취를 감췄다. 위생 수준이 향상되고, 살충제 사용이 늘면서 빈대가 자연스럽게 사라진 것이다. 그러다 해외 교류가 늘며 10여 년 전부터 다시 빈대가 발견되기 시작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중단됐던 해외 여행이 재개되면서 빈대 유입이 급속도로 늘어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교수는 “최근 국내에서 출몰하는 빈대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입국할 때 따라온 해외 유입종으로 추정된다”며 “최근 경기 오산시에선 과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던 ‘반날개빈대’가 처음 발견됐다”고 했다. 이승환 서울대 응용생물화학부 교수는 “살충제 등에 내성이 생긴 빈대가 해외에서 유입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빈대를 박멸하기 어려운 이유로 질긴 생명력을 꼽았다. 빈대는 인간이나 동물의 피를 먹지 않고도 최대 6개월 가까이 생존할 수 있다 보니 직접 물리거나 눈으로 발견하기 전까지는 존재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피를 먹기 때문에 바퀴벌레처럼 다른 먹이로 유인해 퇴치하기도 힘들다. 야간 활동성 곤충이라 주로 밤이나 이른 새벽 시간대에만 활동하는 것도 눈에 쉽게 띄지 않는 이유다.
고온에 약해 스팀 소독 효과적
빈대가 잇달아 출몰하면서 시민들의 우려가 커지자 질병관리청은 빈대 발견 시 대응 방안을 안내하고 있다. 질병청에 따르면 빈대한테 물렸을 경우 물과 비누로 씻고, 의사나 약사를 찾아 증상에 따른 치료법과 의약품 처방을 상의해야 한다. 집이나 숙박 시설에서 빈대가 있는지 확인할 경우 침대 매트리스나 침대 틀, 소파 틈새를 집중적으로 찾아볼 필요가 있다.
빈대는 고온에 약한 편이다. 이 때문에 빈대를 발견했을 경우 고열 스팀 소독을 하고 진공청소기로 남아 있을 수 있는 알과 잔해를 치운 후 오염된 옷과 침대 커버 등 직물은 건조기로 소독해야 한다. 또 살충제 등을 반드시 살포하며 물리적·화학적 방제를 병행해야 한다. 한 번 방제했더라도 남아 있는 알이 부화할 수 있기 때문에 7∼14일 이후 다시 한 번 서식지를 살펴보고 방제하는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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