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커피를 사랑한다. 세종대왕께서도 중국보다 차를 덜 마신다는 말씀을 하신 걸 감안하면 예전부터 차에 대한 기호는 사람마다 달랐던 것 같다. 그런데 100여 년 전 상륙한 커피는 이젠 국민 음료가 됐다. 인구당 스타벅스 매장 수도 단연 세계 1위라고 한다.
그런데 커피숍이 많은 이유가 커피 사랑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낮에 커피숍에 있는 청년 중 절반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란 보도도 있었다. 어르신들 중에서도 커피숍에서 시간을 보내는 분이 적지 않다. 커피숍이 독서실, 경로당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10여 년 전 연구년을 맞아 미국 대학에서 수업할 때였다. 한국의 이미지를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10명 중 8명은 ‘헬조선’ 관련 얘길 했다. 유튜브를 통해서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란 말도 알고 있었다. K드라마를 포함해 한류가 막 퍼질 때여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땅값 비싼 미국 뉴욕 맨해튼에도 시립도서관과 문화센터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누구나 거기서 책을 보고 공부하면 된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한국은 분명 재미있는 곳이지만, 생활 인프라가 부족하고 경쟁에 치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전국적인 공간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지역과 소득을 함께 분석했을 때 건강수명이 가장 긴 계층과 가장 짧은 계층의 차이는 26.5년에 달했다. 가장 긴 곳은 수도권의 한 구에 사는 소득 상위 20% 계층이었고 짧은 곳은 비수도권 기초자치단체에 사는 소득 하위 20% 계층이었다. 전국 어디든 고속철로 두어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한반도에서 의료시설과 복지시설 등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인구 10만 명당 전공의(레지던트) 수는 서울이 14.09명인데 가장 낮은 광역지자체는 1.36명에 불과하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우에만 공간 불평등이 심각한 게 아니다. 현재 국민 10명 중 6명은 아파트에 살고 있고, 나머지 4명은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 등 아파트가 아닌 곳에 살고 있다. 그런데 비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 도서관, 경로당, 어린이집 같은 기본 생활 인프라 접근이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카공족이 늘고 일부 경로당에서 신입 멤버 진입을 막는 일들이 발생한다. 아파트와 비아파트라는 건축 유형에 따라 공간 불평등이 나타나는 건 다른 나라에선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공공임대주택은 양적으로 계속 늘어 전체 주택의 10%에 육박하는 상황이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도 공간 불평등과 공간의 질적 양극화는 날로 심화되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경기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하지만 김포시민이 서울특별시민이 된다고 당장 삶의 질이 달라지진 않는다. 이제라도 국민들에게 경로당, 독서실, 보육시설 등 기본적 생활 인프라 공간을 제대로 제공하는 공간복지로 정책의 중심을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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