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위기징후’ 탈북민 243명… ‘무직’ 55% ‘질병’ 45%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9일 03시 00분


서울시, 전국 첫 지자체 실태조사
취업자중 27% 월 200만원 못벌어
초기정착 지원후엔 복지 소외 많아
불응답 131명… 39명은 소재불명
서울시 “돌봄팀 신설하고 위기가구 지원”

2011년 북한을 탈출한 윤모 씨(51)는 서울의 한 반지하 주택에 혼자 산다. 8평(26.4㎡) 규모인데 월세로 23만 원을 낸다. 남한에 정착하면서 임대 아파트를 지원받았지만 지금은 이혼 후 자녀를 양육하는 아내가 거주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 살다 보니 건강도 좋지 않다. 탈북 전 광산 공사장에서 일하던 중 파편을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해 직업을 갖기도 어렵다. 윤 씨는 “전기 배선 공사 등 주로 일용직으로 연명하고 있다”며 “관절 등 안 아픈 곳이 없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 싶지만 여력이 없다”고 했다.

● 위기 징후 탈북민 절반 이상 ‘무직’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에선 40대 탈북민이 백골 시신으로 발견됐다. 숨진 후 1년가량 흐른 것으로 추정됐는데, 통일부 산하 단체에서 상담사로 활동하며 성공한 탈북민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인물이어서 파장이 컸다.

이후 서울시는 위기 상황에 있는 탈북민을 파악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위기가구로 판단한 208명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주택 임차료를 3회 이상 연체한 35명 등 총 243명을 대상으로 올 8∼10월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응답한 112명 중에는 윤 씨와 같이 경제적 어려움과 건강 문제를 겪는 탈북민들이 적지 않았다. 먼저 무직이 절반 이상(55.3%·62명)이었다. 취업을 했어도 월 소득이 200만 원 미만인 사람이 응답자의 26.8%(30명)에 달했다. 건강도 좋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응답자의 44.6%(50명)는 ‘질병을 갖고 있다’고 했다.

조사에 응답하지 않은 131명 중에는 소재불명이 39명으로 전체의 16%를 차지했다. 위기 징후 탈북민 6명 중 1명의 거취가 불분명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위기 징후 탈북민 실태조사를 진행한 것은 처음”이라며 “현황 파악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필요한 복지 서비스와 연계하기 위해 위기 징후가 높은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탈북민 안전돌봄팀을 신설한 시는 매년 정기조사를 통해 위기징후 탈북민을 관리한다는 계획이다.

조사에 응한 112명 중에는 1인 가구가 응답자의 67.9%(76명)에 달했다. 지인 등과 주 1회 미만으로 교류하거나 아예 교류를 안 한다는 응답자가 31명(27.7%)에 달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는 현실을 보여줬다. 또 응답자의 82.1%(92명)는 추가적인 복지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호소해 시가 연계하고 있다. 이민영 고려사이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탈북민들은 초기 정착 지원이 끝나면 정보 부족으로 일반적인 복지 서비스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 “복지 서비스 연결 늘려야”
2005년 탈북한 전모 씨(44)는 입국 후 김밥가게, 마트 화장품 판매직 등을 전전했다. “투자하면 높은 이자를 주겠다”는 탈북민 지인에게 전 재산 4000만 원을 건넸다가 떼이기도 했다. 전 씨는 “말투에서 탈북민이라는 게 티가 나기 때문에 일자리 구하는 게 어렵다”며 “안정적 수입 없이 정서 불안인 자녀를 키우느라 힘들지만 어디에 어떤 지원을 신청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전문가들은 실태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각지대가 더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각 지자체의 탈북민 지역적응센터 등을 기반으로 복지 서비스를 더 긴밀하게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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