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50대 남성 “법과 정의는 살아있어야”

  • 뉴시스
  • 입력 2023년 11월 12일 14시 59분


“선순위 근저당이 있는 부산 해운대 송정의 한 ‘나홀로아파트(한 동짜리 아파트)’에 보증금 7000만원 전세로 들어갔다. 신탁물건이지만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물건이라 믿고 계약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나자 해운대신협(우선수익권자)을 통해 신탁회사가 명도소송을 제기해 불법점유를 피하려 쫒기듯 나왔다.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한 전세사기특별법이 제정됐지만 그 집에는 이미 집주인으로부터 빌린 돈을 받지 못했다며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12일 경남 김해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세피해자 A(53)씨는 당시 상황을 이같이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직장인 김해에서 바다가 보이는 부산 해운대 송정에 있는 집까지 출퇴근하는게 조금은 부담됐지만 어차피 출장이 많아 그 곳에 집을 마련했다. 그 전에는 경남 김해의 원룸 생활을 했는데 비좁고 냄새나는 원룸을 탈출해 ‘사람답게 살고 싶어’ 그 집에 들어갔다. 작년 여름 출장에서 돌아온 그날, 현관 앞에 붙은 명도소송통지서를 보고 ‘전세사기’가 나에게도 닥쳐옴을 직감했다. 한 중년 가정의 삶을 이렇게 ‘사기’로 내모는 현실이 미웠다. 낮에는 직장 일을, 밤에는 대리기사와 편의점 알바로 전세 대출금을 매달 200만원씩 갚아나갔지만 정말 너무 힘들다. 삼각김밥과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숱하게 입에 구겨 넣으면서 정의는 살아있는것인지, 대한민국이 원망스러웠다.”

누군가는 A씨 사례가 민간인들 간의 사적 거래로 정부가 나설 수가 없다고 하지만 ‘공인중개사’가 소개한 물건조차 믿을 수 없다는 현실에 정부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음을 알게된 그날부터 시청, 법원, 경찰서, 전세피해지원센터등을 쉴새없이 오갔지만 정부로부터 온전히 받을 수 있었던 지원은 없었다. A씨는 주위 이웃들도 다들 마찬가지라고 전한다.

A씨는 “나중에 알게 됐지만 해당 아파트 실소유주였던 건설업자가 모든 집에 대해 근저당을 설정해 은행대출을 받아 놓은 뒤 전세를 놓고, 전세금을 인근 또 다른 아파트 건설에 투자했다가 분양이 잘 안되자 근저당 이자를 못내 공매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도 세입자들이 신탁사로부터 명도 소송을 피하기 위해 방을 빼는데도 또 다른 공인중개사를 통해 전세 여부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있어 똑같은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엄동설한에 명도소송을 피하기 위해 집을 비운 상태다. 나 또한 모텔과 찜질방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아이들도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져 학교에 다니고 있다. 너무 서럽다”고 호소했다.

해당 건설업자는 건물을 담보로 지역신협으로부터 거액을 대출받아왔고 신탁회사로 법적 소유권이 넘어갔음에도 공인중개사를 통해 세입자들에게 신탁회사의 동의를 받았다고 하는 등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전세 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정부도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을 이유로 빗겨갔다.

A씨가 받은 지원은 2년간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임대한 집에 월세30~5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다는 것뿐이다. 피해 보전은 요원했다.

전세사기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때 세입자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하는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6월 통과됐지만 해당 아파트를 살 돈이 없었다. 또 다른 대출을 해서 돈을 마련해야 했지만 전세 대출을 받은 상황에서 여기저기 빌릴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실의 ‘2023년 상반기 실거래가 분석을 통한 주거 정책 현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체 주택의 전세가율은 71.7%였다. 업계에서는 전세가율이 80%를 넘는 주택을 깡통주택으로 본다.

연립·다세대 주택의 경우 강원(112.5%), 전북(112.1%),경남(108.2%) 순으로 높았다.

임대차계약 전 세입자가 집주인의 세금체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신설됐지만, 집주인이 얼마의 대출을 받았는지까지는 알 수 없다. A씨가 다시 전세사기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곤 아무도 보장할 수 없는 현실이다.

A씨는 “작년부터 법정 다툼을 지금까지 이어가고 있다. 경찰서에 신고해보니 내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만 피해자가 수두룩했다. 뉴시스에 보도되고 나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고소건들이 하나로 모아져서 도망다니던 실소유주(건축업자)를 경찰이 끝까지 쫒아가 붙잡아 구속했다. 사건을 맡은 해운대경찰서 경제팀장이 첫 재판에 나와 피해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공인중개사도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들은 70대 노모를 모시고 사는 중년 남성, 20대 사회 초년생, 30대 신혼부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중년부부 등 다양했다. 법정에서 시한부 삶을 살고 있다던 중년 남성의 호소가 지금도 뇌리를 스친다. ‘나의 삶이 끝나기 전에 법의 정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고 토로했다.

검사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건설업자,공인중개사)에 대해 재판부(부산지법 제1형사부)에 구형하는 ‘결심’ 공판이 부산지법 동부지원 304호 법정에서 12월12일 오후2시30분에 예정되어 있다.

[김해=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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