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1년 인턴’ 없애고 ‘2년 임상수련의’ 도입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3일 03시 00분


[의사 인턴제 폐지]
의사 수련체계 67년만에 전면수술
인턴, 수련보다 잡무 시달려… 임상수련의, 필수의료과정 집중
이르면 2025년부터 개편… 임상수련의 마쳐야 개원 허용 검토

의대 졸업 후 1년간 대학병원에서 여러 전공 과목을 돌며 배우는 ‘인턴(수련의)’ 제도가 이르면 2025년부터 사라진다. 1958년 도입 이후 67년 만이다. 그 대신 2년간 체계적으로 여러 진료 과목을 거치는 ‘임상수련의’ 제도가 신설된다. 인턴을 기피하는 젊은 의사들이 의대를 졸업하자마자 개원에 쏠리고 대학병원에서 새내기 의사들이 무분별하게 혹사당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임상수련의를 마쳐야만 개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양질의 필수의료 인력 확보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2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7월부터 의료계 및 전문가 그룹이 참여하는 ‘전공의 수련 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이 같은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TF가 논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르면 2025년부터 새로운 수련 체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 운영돼온 인턴 과정의 취지는, 의대(예과+본과) 졸업 후 1년간 병원의 모든 전공과목을 두루 경험하며 기초적인 의학 지식을 습득하고 적성에 맞는 전공과목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인턴이 끝나야 원하는 과목에 지원해서 3, 4년간 레지던트(전공의) 수련을 거친다. 그 뒤 ‘전문의’ 자격시험을 통과하면 해당 진료 과목의 전문의가 된다. 1958년 전문의 수련 제도 시행 이후 이 틀은 그간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최근 필수의료 붕괴, 의료 인력 공백 사태에서 인턴 제도 역시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 커졌다. 주당 80시간을 넘나드는 장시간 근로, 체계적인 의료 기술 습득보다는 지도교수의 학회 업무에 동원되거나 온갖 허드렛일에 투입되는 현실 등이 문제로 꼽혔다. 지난해 대한전공의협의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턴 2명 중 1명(50.8%)은 “업무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요구받았다”고 답했다. 의료계에서는 “인턴은 병원 1층 바닥보다 아래”라는 자조도 나온다. 이 때문에 의대를 졸업한 뒤 인턴을 거치지 않고 아예 일반의 자격증만 가지고 동네 병원 개원으로 진로를 트는 젊은 의사들도 늘고 있다. 이는 중증외상, 소아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의 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인턴을 없애고 2년간의 임상수련의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2년 동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과목을 집중 수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TF는 의대 졸업생이 임상수련의 과정을 마쳐야 개원할 수 있도록 법 제도를 바꿀 계획이다. 현재 일반의들이 개원하는 병원은 대부분 ‘돈이 되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미용 시술 분야에 쏠리고 있다. 정부는 임상수련의 과정을 마치지 않으면 다른 병원에 취직해 일하는 ‘페이 닥터’(월급 의사) 취업은 허용해도 단독 진료(개원)는 못 하도록 할 방침이다.

2년간 ‘내외산소’ 수련해야 개원 허용… 필수의료 공백 막는다


임상수련의 도입
2년제 임상수련의, 필수의료 집중… 지역 공공병원 파견근무도 검토
의료계 “병원 인력 확충 없으면
2년짜리 인턴으로 전락할 우려”

청소, 빨래, 커피 배달, 음식 주문, 도서관 책 반납, 서류 정리….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전공의 903명 대상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한 ‘인턴이 하는 일’들이다. 설문 응답자 절반은 수련 기간 중 진료 과목에 필요한 역량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인턴 4명 중 3명(75.4%)이 주당 80시간 넘게 일하고 있지만 병원 안에서는 사실상 ‘잡일을 도맡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형적으로 운영되는 인턴 과정을 개편해야 한다는 데는 정부와 의료계 간 이견이 없다. 12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공의 수련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는 7차례 회의를 통해 크게 3가지 방안을 논의했다.

● 2년제 임상수련의 “필수의료 경험”

첫 번째 TF 안은 인턴 대신 2년제 임상수련의(가칭)를 도입하고, 2년 동안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와 응급의학과, 선택과목 등 총 6개 과목을 각각 4개월씩 거치도록 하는 방안이다. 현재는 인턴이 ‘내외산소’ 과목을 경험하는 기간이 각 4주에 불과하다.

두 번째 안은, 2년제 중 처음 1년은 주요 과목을 두루 거치며 경험을 쌓고 나머지 1년은 내과와 외과 중 하나를 선택해 집중 수련시키는 방식이다. 고교 문·이과 체계와 비슷하다. 레지던트(전공의)로서 신경외과, 정형외과 등 전문 과목을 본격적으로 수련하기 전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한편 TF에선 의대 졸업 후 임상수련의 과정 없이 바로 레지던트 수련을 시작하는 안이 제시됐다. 하지만 이는 “여러 필수의료 과목을 경험해 볼 기회를 잃게 된다”는 지적이 TF 내에서 나왔다.

● “수련의를 지방 병원에 파견” 제안도

TF에선 전공의 수련체계를 바꿔 지방 의료인력 공백 문제를 해소하자는 제안도 검토되고 있다. 2년제 임상수련의를 일정 기간 원래 소속 병원이 아니라 지역의 공공병원 등에서 ‘순환 근무’ 시키자는 의견이다. 실제 일본은 경우 수련의 1, 2년 차 ‘주니어 레지던트’를 4∼8주씩 지역 의료기관에 보내 근무시키고 있다. 호주는 정부가 추가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지방 소도시 병원에 레지던트를 파견해 근무시키고 있다. TF에 참여하는 한 전문가는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장에 나오기까지 10년이 걸리는 만큼 수련의를 활용하는 게 당면한 지역의료 공백을 해결할 ‘묘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실제 지방 의료 현장에서 경험을 쌓다 보면 지방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고 그 지역에 정착하는 의료 인력의 수를 늘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의대 졸업 후 추가 수련을 받지 않은 ‘일반의’가 의원을 차리거나 취직하는 사례가 느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도 정부의 인식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이 올해 보건복지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문의 자격증을 따지 않고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형외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등 이른바 ‘인기 과목’에서 근무하는 일반의 수는 2017년 말 128명에서 올해 9월 245명으로 늘었다. 이 중 87명(35.5%)은 성형외과 진료를 보는 것으로 나타나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는 미용 분야에 종사하는 의사가 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상수련의 제도가 시행되면 2년간 필수의료 과목을 수련해야만 개원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이런 문제도 다소 완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 의료계 “병원들도 추가 인력 뽑아야”

젊은 의사들 사이에선 수련 과정 개편만으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형 고려대 안암병원 내과 전공의는 “병원에서 인턴은 수없이 많은 일을 한다. 이들의 업무를 대신할 추가 인력을 뽑지 않는다면 임상수련의 제도를 도입한들 ‘2년짜리 인턴’에 그치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들이 인턴을 ‘값싼 노동력’으로 보고 추가 인력을 뽑는 대신 이들에게 지나치게 많은 업무를 전가하기 때문에 수련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턴 제도 개편을 통해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 분야를 경험하는 기회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구체적인 개편안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인턴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인턴 1년+레지던트 3, 4년) 중 하나. 의대 졸업 후 1년 동안 대학병원에서 내과, 외과 등 모든 과를 순환 근무한다.
일반의-전문의
일반의는 의대 졸업 이후 의사면허를 딴 사람이다. 그 이후 인턴, 레지던트 등 수련 과정을 마치고 세부 전공을 받으면 전문의가 된다. 전문의가 개원한 병원만 ‘홍길동 내과’, ‘김철수 이비인후과’와 같이 과목명을 간판에 걸 수 있다. 일반의 개원 병원은 과목 없이 ‘홍길동 의원’이라고만 내걸 수 있다.


#인턴 폐지#임상수련의#필수의료과정#의사 수련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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