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 이은해(왼쪽)·조현수가 지난해 4월 19일 오후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인천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2.4.19. 뉴스1
‘계곡 살인’ 사건으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30년을 확정받은 이은해(32)와 조현수(31)가 지인들에게 도피 행각을 도와달라고 요청한 행위를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이 씨와 조 씨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지난달 26일 사건을 인천지법에 돌려보냈다.
이 씨와 조 씨는 2019년 6월 이 씨 남편 윤모 씨(사망 당시 39세)를 경기 가평군 계곡에서 살해한 뒤 윤 씨 명의의 사망보험금을 편취하려다가 미수에 그쳤다는 범죄 사실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이들은 2021년 12월 검찰 조사 직후 지인들에게 은닉처와 은닉 자금 등을 지원해달라고 부탁해 자신들의 도피를 교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두 사람은 잠적해 4개월여간 도망 다니다가 지난해 4월 16일 경기 고양시 덕양구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됐다.
판례에 따르면 범인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자신의 도피를 위해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 아니다. 도피를 일종의 방어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다만 타인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등 방어권을 남용한 사정이 있다면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할 수 있다.
검찰은 이 씨와 조 씨의 경우 스스로 도피하기 위한 행위였지만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난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적용했다.
1심에서는 두 사람에게 각각 징역 1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는 스스로를 도피시키기 위한 것이기는 하나 일반적인 도피행위의 범주를 벗어나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하거나 형사피의자로서 가지는 방어권을 남용한 경우”라고 판단했다.
이어 “신속하게 종적을 감춘 다음 은신처와 휴대전화, 컴퓨터, 생활용품 등을 확보하고, 일손과 승용차를 통해 손쉽게 이사했다”며 “수사기관의 집중적인 탐문과 수색에도 불구하고 120일이 넘는 기간 동안 도피 생활을 지속했다”고 지적했다.
2심 재판부도 쌍방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통상적 도피의 범주로 볼 여지가 충분해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 취지로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수사를 피하기 위해 친구를 통해 은신처를 제공받고, 그들이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다른 은신처로 이동한 행위는 통상적 도피의 범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증거가 발견된 시기에 도피했다거나 도피 생활이 120일간 지속됐다는 것, 수사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던 것, 변호인을 선임하려고 했다는 것, 일부 물건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것 등은 통상적인 도피행위 범주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이어 “(도피를 도운) 행위자들은 친분 때문에 도와준 것으로 보이며 조직적인 범죄단체를 갖추고 있다거나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한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사정만으로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해를 초래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판결에 범인도피교사죄의 성립 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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