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지역구서 쏟아낸 공약 1만4119개… 30%는 검증조차 불가능한 ‘空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14일 03시 00분


21대 의원 238명 공약 전수분석
검증 가능 공약 9883개 중
이행 완료된 건 18.5%뿐

22대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21대 지역구 국회의원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 10개 중 3개는 추상적이거나 구체적인 계획이 없어 검증이 불가능한 ‘공약(空約)’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검증 가능한 공약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올 6월 말 기준 이행률은 18.5%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3일 동아일보가 한국정치학회와 함께 21대 지역구 국회의원 전원의 2020년 총선 공약 이행 여부를 점검한 결과다. 분석은 21대 지역구 당선자 253명 중 의원직을 잃은 15명을 제외한 238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 과정에서 중앙선관위에 낸 공약은 모두 1만4119개였는데 그중 30%에 해당하는 4236개는 검증이 불가능한 공약으로 나타났다. ‘북핵 문제 해결’ ‘공교육 정상화’ 등 추상적 선언에 불과하거나 국회의원의 권한을 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검증 가능 공약 9883개를 올 6월 말 기준으로 완료, 진행 중, 보류 등 3가지로 분류했는데 그 결과 완료된 공약은 18.5%(1833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임기가 80%가량 지났음에도 공약 6건 중 1건만 이행한 것이다. 아예 착수조차 못 한 ‘보류’ 공약이 36.3%(3584개)나 됐다. 나머지 45.2%(4466개)는 진행 중이었다.

이번 분석에 참여한 한국정치학회 소속 김형철 한국선거학회장은 “실현 가능성이 없거나 타당성이 높지 않은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뒤 이행 여부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 행태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공약을 검증한 후 이행 여부를 평가하고 다음 선거에 반영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편 가르기식’ 포퓰리즘이나 정치 양극화 현상도 개선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입법공약 45% 발의조차 안돼… 지역 현안사업 이행은 17% 그쳐


[국회 지역구 238명 공약 전수 분석]〈上〉 ‘사업-입법-예산’ 유형별 분석
예산 관련은 44% “완료” 평가… 중년수당 등 포퓰리즘 공약 많아
총선전 백지화된 사업 공약 걸고
“한반도 평화” 등 모호한 내용도
4년마다 총선 시즌이 돌아오면 여야 정당과 후보자들은 “반드시 지키겠다”며 공약을 내걸고 유권자들에게 표를 호소한다. 하지만 당선된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내걸었던 공약을 모르는 척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행태가 가능한 것은 공약 상당수가 ‘글로벌 인재 육성’ ‘한반도 평화 정착’처럼 선언적이거나 당선된 후 국회의원 한 명이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 66조는 대통령 선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경우 선거공약을 담은 인쇄물에 ‘사업 목표와 우선순위, 이행 절차, 기한,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게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총선의 경우 해당되지 않는다.

동아일보와 한국정치학회의 분석에선 2020년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238명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공약 10개 중 3개가 구체성이 떨어져 검증이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 ‘선심성’ 사업 공약 남발… 이행률 20%도 안 돼
동아일보와 한국정치학회는 국회의원 공약 1만4119개 중 검증 불가능한 4236개를 제외하고 나머지 9883개를 사업, 입법, 예산 등 유형별로 나눠 이행 여부를 평가했다.

지역 현안과 관련된 사업 공약은 전체 공약의 87.8%를 차지했지만 ‘완료’로 평가된 이행률은 17.2%로 가장 낮았다. 반면 ‘보류’로 분류된 공약은 3개 중 1개에 해당하는 35.6%에 달했다.

특히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공약 중에는 사업 타당성 조사 등 필수 절차가 진행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400억 원이 넘는 대규모 스포츠센터를 건립하겠다”고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이 스포츠센터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예산 확보의 어려움 등을 이유로 2020년 총선 전에 백지화했던 사업이었다.

4년마다 총선 공약 이행 여부를 조사해 발표하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관계자는 “사업 공약의 이행률이 낮은 것은 후보자들이 이해관계가 얽힌 다른 지역을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남발하기 때문”이라며 “선거가 끝나면 이런 공약들 탓에 지역마다 갈등이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발의조차 안 된 입법 공약 44.7%
국회의원 본연의 역할인 입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공약 중에도 완료된 공약 비율은 19.7%에 그쳤다. 발의조차 되지 않은 ‘보류’ 상태의 공약이 44.7%로 절반에 육박했고 발의는 했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진행 중’ 공약이 35.6%였다.

지역 사업과 관련된 특별법 제정 등을 내걸었지만 제대로 발의조차 하지 않은 채 흐지부지된 공약이 수두룩했다. 개헌이 필요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폐지’를 법안으로 만들겠다는 의원도 있었다.

한국정치학회 관계자는 “입법 발의는 국회의원 10명의 동의만 모으면 할 수 있는데 그조차 안 했다는 건 처음부터 이행 의지가 없었거나 현실적이지 않은 공약이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예산 관련 공약 중에는 완료된 공약이 44.3%로 그나마 높은 편이었다. 예산을 일부만 확보해 ‘진행 중’으로 분류된 공약이 24.0%였고, 예산을 전혀 확보하지 못해 ‘보류’된 경우는 31.7%였다.

보류된 예산 공약 상당수는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노린 현금 살포성 포퓰리즘 공약이었다. 비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미 시행 중인 노인 기초연금 외에도 중년수당, 청년기초수당, 학생수당 등 각종 현금 지원 공약을 대거 발표했지만 현실화되지 않았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관계자는 “대규모 예산을 동원한 선심성 공약들은 현실화되기도 어렵고, 현실화될 경우 정부 재정에 지속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유권자들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의원실 42곳 “공약 이행률 49.5%”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의원 114명의 공약 이행률은 23.1%로 나타났고, 나머지 비수도권 의원 124명의 공약 이행률은 13.6%로 1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한국정치평론학회 관계자는 “인구와 재원이 부족한 비수도권의 경우 상대적으로 공약 이행률이 낮을 수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공약 분석을 진행하며 각 의원실에 공약 이행률을 자체적으로 평가해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국민의힘 20곳, 더불어민주당 22곳 등 42곳에서 회신을 보내 왔는데 이들이 매긴 공약 이행률은 49.5%였다. 자체 평가에서도 절반을 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동아일보와 한국정치학회 분석에선 이들 의원실의 공약 이행률이 16.9%에 불과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선관위에 제출한 공보물에는 당 차원에서 추진하는 공약도 다수 포함돼 있다”며 “이런 공약은 지역구 의원이 자체적으로 사업을 주도하기 어려운 점도 공약 이행률 평가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공약 1만4119개#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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