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만학도가 된 사연을 전했던 김정자 할머니(82)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됐다. 김 할머니는 이번 수능의 최고령 응시자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생인 김 할머니는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같은 학교 학우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김 할머니는 교문으로 들어가기 전 “젊은 학생들 각자가 3년 동안 배운 실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인생을 걸고 있는 날인데 학생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우리나라를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새 일꾼이 되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1941년생인 김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 경남 마산으로 건너왔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려운 형편에 8남매의 맏딸이라는 이유로 공부하는 것을 꿈도 꾸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자식을 다 키워낸 뒤 평생 한이 됐던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만학도가 됐다. 2019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할머니는 “우리 딸이 미국으로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엄청 울었다. 내가 이렇게 무식한 엄마라서 딸이 들어가는 출입구도 모르더라.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를 어떻게 알겠나”라며 글을 몰라 서러웠던 때를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외대 앞에서 장사하던 시절 한 학생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됐다. 할머니는 “당시 학생이 노트 한 장을 찢어 ‘ㄱ’ ‘ㄴ’을 써줬다. 차근차근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던 학생 덕분에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됐다”며 학생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김 할머니는 길을 걷다 우연히 건네받은 부채에서 문해 학교를 알게 돼 찾아갔다고 한다.
방송 당시 양원주부학교에 다니던 김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잘 못 걸어서 오전 6시 30분이 되면 집에서 나와야 한다”면서도 “한글을 배우고 수업받는 게 너무 좋다. 내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모든 것이 즐겁다”고 기뻐했다.
가방 속에 교과서를 꼼꼼히 챙겨 다니는 김 할머니는 “책가방을 며느리가 사줬다. 그때 너무 좋았다. 내가 학생이라는 걸 느끼고 학생의 신분이 됐으니까”라며 “첫 교실에 들어갈 때는 담임선생님을 보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고 입학 당시를 회상했다.
방송에서는 양원주부학교 졸업을 앞둔 김 할머니의 소감이 담긴 글도 소개됐다. 할머니는 “더 배우고 싶지만 학교 규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졸업해야 한다. 건강이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졸업장을 두 개 더 받고 싶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황혼의 나이에 양원주부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조금 더 일찍 학교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많다”고 직접 쓴 글을 읽으며 눈물을 내비쳤다.
김 할머니는 “내 인생을 살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꿈만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공부만 생각하고 있다”며 “뭐든지 하고 싶은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양원주부학교 졸업 후 일성여중·고까지 진학한 김 할머니는 결석 한번 없이 공부에 매진한 끝에 올해 수능을 치르게 됐다. 할머니는 영문학과에 진학해 미국에 사는 손주들과 ‘프리 토킹’하는 것이 목표다.
김 할머니의 반가운 근황에 누리꾼들은 “정말 멋지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사신다” “울컥한다” “앞날을 응원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등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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