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나온 김정자 할머니, 82세 최고령 수능 응시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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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1월 16일 13시 46분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교육청 제12시험지구 제17시험장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최고령 수험 응시생 김정자 할머니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교육청 제12시험지구 제17시험장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최고령 수험 응시생 김정자 할머니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우들의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하고 있다. 뉴스1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만학도가 된 사연을 전했던 김정자 할머니(82)가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치르게 됐다. 김 할머니는 이번 수능의 최고령 응시자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생인 김 할머니는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같은 학교 학우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김 할머니는 교문으로 들어가기 전 “젊은 학생들 각자가 3년 동안 배운 실력을 보여주면 좋겠다. 인생을 걸고 있는 날인데 학생 모두 자기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해 우리나라를 앞으로 짊어지고 나갈 새 일꾼이 되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교육청 제12시험지구 제17시험장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최고령 수험 응시생 김정자 할머니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우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뉴스1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16일 오전 서울교육청 제12시험지구 제17시험장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앞에서 최고령 수험 응시생 김정자 할머니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우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뉴스1
1941년생인 김 할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광복 이후 경남 마산으로 건너왔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어려운 형편에 8남매의 맏딸이라는 이유로 공부하는 것을 꿈도 꾸기 어려웠다고 한다.

김 할머니는 자식을 다 키워낸 뒤 평생 한이 됐던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만학도가 됐다. 2019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할머니는 “우리 딸이 미국으로 출국하던 날 공항에서 엄청 울었다. 내가 이렇게 무식한 엄마라서 딸이 들어가는 출입구도 모르더라. 한글도 모르는데 영어를 어떻게 알겠나”라며 글을 몰라 서러웠던 때를 토로했다.

김 할머니는 외대 앞에서 장사하던 시절 한 학생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됐다. 할머니는 “당시 학생이 노트 한 장을 찢어 ‘ㄱ’ ‘ㄴ’을 써줬다. 차근차근 이름 쓰는 법을 알려주던 학생 덕분에 이름 석 자를 쓸 수 있게 됐다”며 학생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김 할머니는 길을 걷다 우연히 건네받은 부채에서 문해 학교를 알게 돼 찾아갔다고 한다.

김정자 할머니가 문해 학교를 알게 된 부채.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영상 캡처
김정자 할머니가 문해 학교를 알게 된 부채.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영상 캡처
방송 당시 양원주부학교에 다니던 김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잘 못 걸어서 오전 6시 30분이 되면 집에서 나와야 한다”면서도 “한글을 배우고 수업받는 게 너무 좋다. 내 인생이 바뀌어 버렸다. 모든 것이 즐겁다”고 기뻐했다.

가방 속에 교과서를 꼼꼼히 챙겨 다니는 김 할머니는 “책가방을 며느리가 사줬다. 그때 너무 좋았다. 내가 학생이라는 걸 느끼고 학생의 신분이 됐으니까”라며 “첫 교실에 들어갈 때는 담임선생님을 보고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고 입학 당시를 회상했다.

김정자 할머니가 문해 학교에 다니며 모든 것이 즐겁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영상 캡처
김정자 할머니가 문해 학교에 다니며 모든 것이 즐겁다고 말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디글 :Diggle’ 영상 캡처
방송에서는 양원주부학교 졸업을 앞둔 김 할머니의 소감이 담긴 글도 소개됐다. 할머니는 “더 배우고 싶지만 학교 규칙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졸업해야 한다. 건강이 허락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졸업장을 두 개 더 받고 싶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황혼의 나이에 양원주부학교 문을 두드렸지만 조금 더 일찍 학교를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많다”고 직접 쓴 글을 읽으며 눈물을 내비쳤다.

김 할머니는 “내 인생을 살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꿈만 같다. 이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공부만 생각하고 있다”며 “뭐든지 하고 싶은데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올해 최고령 수능 응시생인 김정자 할머니가 수험생 유의사항을 읽고 있다. 뉴스1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둔 지난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에서 올해 최고령 수능 응시생인 김정자 할머니가 수험생 유의사항을 읽고 있다. 뉴스1
양원주부학교 졸업 후 일성여중·고까지 진학한 김 할머니는 결석 한번 없이 공부에 매진한 끝에 올해 수능을 치르게 됐다. 할머니는 영문학과에 진학해 미국에 사는 손주들과 ‘프리 토킹’하는 것이 목표다.

김 할머니의 반가운 근황에 누리꾼들은 “정말 멋지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사신다” “울컥한다” “앞날을 응원한다”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 등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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