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떠나며… 아랍인이 대규모로 거주하기 시작
英, 1차 세계대전 때 자금 필요하자
아랍-유대인 모두에게 독립국 약속… 전쟁 이후 양측 영토 갈등 심화돼
유대인,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포… 분쟁 계속되며 현재까지 전쟁 중
10월 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단체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향해 5000여 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전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습니다. 11월 초인 지금까지 양측은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은 하마스에 대한 보복을 천명하며 가자지구로 진입해 군사작전을 전개 중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이런 무력 충돌이 발생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948년부터 시작된 유혈 사태는 반세기가 넘도록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곳 주민은 왜 이렇게 서로 적대하며 공존과 화합을 이루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세계지리 이야기는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며 수십 년째 분쟁을 이어오는 팔레스타인에 관한 것입니다. 이곳의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고대 문화의 중심지 팔레스타인
고대의 유럽과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세계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형성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세상의 중심이 지중해라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지중해의 영어 이름인 ‘Mediterranean Sea’의 어원을 보면 ‘Medium(중간)+Terra(땅, 지구)’ 즉, ‘지구 중간의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한자어 지중해 역시 ‘地中海’(지구 가운데 바다)입니다. 그리고 이 지중해 동쪽의 팔레스타인은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접하며 다양한 문화와 민족이 교류하던 곳이었습니다.
당시에도 다양한 갈등은 있었지만, 팔레스타인과 그 주변의 중동은 헬레니즘 문화를 중심으로 주민 간에 자유롭고 포용적인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던 중 서기 132년, 이곳을 통치하던 로마제국은 이 땅의 주요 주민 중 하나인 유대인의 독립항쟁을 빌미로 팔레스타인 중심 도시 예루살렘의 유대인 거주를 금지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은 종교적으로 중요한 성지였고 예루살렘 거주권을 박탈당한 유대인은 유럽과 아시아 등지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 영국의 삼중 계약과 분쟁의 시작
유대인이 떠난 팔레스타인에는 이슬람교의 번영과 함께 아랍인들이 대규모로 거주하기 시작합니다. 아랍인은 아랍어를 사용하는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고 주로 이슬람교를 믿습니다. 그러다 20세기 초반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팔레스타인과 중동에 살던 아랍인들은 함께 이슬람교를 믿지만, 민족적 뿌리는 다른 오스만 제국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오스만 제국은 1차대전에서 영국과 전쟁 중이었고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합니다.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면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과 중동에 아랍인들의 독립 국가를 세워주겠다는 약속이었죠. 이 약속을 당시 영국 외교관인 헨리 맥마흔의 이름을 따 ‘맥마흔 선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된 전쟁에서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은 당시 금융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유대인들과 또 다른 약속을 합니다. 전쟁 자금을 지원해 주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국가를 세울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약속이었죠. 당시 영국의 외교장관인 아서 밸푸어의 이름을 딴 ‘밸푸어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영국의 약속은 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영국은 프랑스와 전쟁 이후 팔레스타인을 포함한 중동 전체를 분할 통치하자고 협정을 맺습니다. 즉, 팔레스타인과 중동을 두고 영국은 무려 세 가지의 서로 모순되는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반세기 넘는 팔레스타인 분쟁의 씨앗이 됩니다.
● 이스라엘의 건국과 중동전쟁
세월이 흘러 1947년, 팔레스타인은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영국의 약속을 믿고 아랍인의 국가가 세워질 거라 믿는 아랍인들과, 역시 영국의 약속을 믿고 유대인의 국가가 세워질 거라 믿으며 세계 각지에서 팔레스타인을 찾아 귀향한 유대인들이 갈등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랍인으로서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오랜 거주 공간이었고, 유대인으로서는 2000여 년 전 떠나온 고향이었습니다. 양측의 갈등이 심각해지자 영국은 골치가 아팠는지 팔레스타인 문제를 유엔에 맡겨 버립니다. 그런데 유엔은 인구가 약 130만 명인 아랍인에게 팔레스타인의 44%를, 인구 약 60만 명인 유대인에게 56%를 분배합니다.
아랍인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팔레스타인은 자신들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며 1948년 유대인 국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신생국 이스라엘을 인정할 수 없던 주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침공하며 긴 중동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 누가 옳은지 도저히 판단하기 어렵다면?
1973년을 끝으로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은 공식적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내에서의 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현재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두 곳에는 아랍인들이 거주 중이며 나머지 지구에는 유대인들이 거주 중입니다. 유엔에서는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인 팔레스타인 공화국으로 분류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공식적으로 이곳 전부를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로만 분류합니다. 즉,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거주 지역은 누군가에겐 국가로 인정되지만, 또 누군가에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 내에 속한 특수한 지역으로만 분류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 강경파 아랍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을 몰아내고 아랍인만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테러와 폭력투쟁을 일삼습니다. 이번 사태의 한 축인 하마스가 바로 그 대표적인 세력입니다. 반대로 강경파 유대인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마저도 빼앗아 이스라엘 내에서 아랍인을 모두 쫓아내려고 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정부의 성향은 이런 강경파 유대인들과 방향성을 함께합니다.
결국, 양측의 강경파는 모두 상대방을 팔레스타인에서 완전히 배척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이들 간의 분쟁은 끝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쟁 속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대상은 양측의 무고한 민간인들입니다. 세상의 일은 대부분 복잡계입니다. 맥락을 알아야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태도 그러합니다.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 나름의 맥락과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다양한 맥락과 이유 속에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 우리는 최소한 한 가지 기준은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결정으로 무고한 사람이 피해를 본다면, 그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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