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이 탑재된 실험 차량에 탑승해 운전대를 잡고 눈을 감자 2초 만에 모니터 계기판의 ‘피로도’가 올라갔다. 이어 상태 표시가 ‘깨 있음’에서 ‘약한 수면’으로 바뀌더니 음성 경고가 나왔다.
계속 눈을 감고 있자 2초 뒤 이번엔 ‘수면’이란 음성 경고가 나왔다. 3초가 더 지나자 이번엔 1초 간격으로 ‘삑’ 소리의 경고음이 들렸다. 눈을 뜨자 끝까지 차올랐던 피로도가 내려가면서 다시 ‘깨 있음’ 상태가 됐다.
● 시선 추적하며 졸음운전 실시간 경고
기자는 이날 시선 추적기술 분야의 글로벌 선두주자인 스웨덴 기업 토비의 DMS를 체험했다. 차 내부에 설치된 소형 카메라가 운전자의 눈동자 움직임, 깜박이는 속도, 눈꺼풀 모양 등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졸음운전을 예방하는 시스템이다.
체험 기간 기자의 신체적 변화는 3차원 데이터를 통해 상세히 분석됐다. 기자의 눈꺼풀은 완전히 감긴 상태부터 완전히 뜬 상태까지 세밀하게 나뉘어 분류됐다. 졸린 정도를 표시하는 게기판도 5단계로 나뉘어 표시됐다. 데이터를 통해 장시간·단시간 집중력 저하도 등도 측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군나르 트로일리 토비 자동차 부문 기술책임자는 “DMS 카메라는 운전자의 성별, 키, 인종 등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작동하며 선글라스나 모자, 마스크를 쓰더라도 눈동자를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부터 시선추적 기술을 연구해 온 토비는 2021년부터 본격적으로 DMS 사업화에 몰두했다. DMS 도입에 적극적인 유럽연합(EU)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EU는 2019년 ‘차량의 일반 의무 및 기술 요구 사항’ 법령을 개정해 2024년 하반기(7~12월)부터 형식 승인이 필요한 신차에 DMS를 내장하게 했다. 2026년 하반기(7~12월)부터는 출고되는 모든 차량에 DMS 내장이 의무화된다.
토비는 이 같은 규제 변화에 발맞춰 제품 개발에 속도를 냈고 올해 독일의 한 대형 자동차 부품회사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토비의 DMS가 내장된 자동차는 2025년 출시된다. 트로일리 기술책임자는 “20년 이상 발전시켜 온 토비의 시선 추적 기술을 DMS에 접목하며 앞으로도 시너지를 창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 EU 졸음운전 방지 시스템 의무화
EU가 선도적으로 DMS를 의무화한 것은 졸음운전과 주의 태만에 대한 경각심 때문이다. 스웨덴 국립도로교통연구소(VTI)의 안나 아눈드 선임연구원은 “EU 국가에서 발생하는 전체 교통사고의 20%가량이 운전자 피로로 인한 졸음이나 주의 태만 때문에 발생한다”며 “졸음운전은 음주운전과 달리 측정이 어려워 과소 집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시급히 근절해야 한다는 점은 똑같다”고 했다.
스웨덴에선 졸음운전의 위험성과 DMS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겨울철 스키장에 가기 위해 장거리 운전을 자주 한다는 라이드 씨(57)는 “하루에 6, 7시간가량 운전하다 보면 졸릴 수밖에 없다”며 “졸릴 때마다 차를 잠시 세우고 커피를 마시거나 몸을 움직이는데 DMS를 설치하면 졸음운전 방지에 도움이 될 것 같다”라고 했다.
유럽 자동차 전문가들은 2030년경이면 DMS가 안전벨트, 에어백처럼 보편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DMS 의무화를 선택하면서 ‘뉴 노멀’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DMS 제조사인 ‘스마트아이’의 마르틴 크란츠 최고경영자(CEO)는 “1960년대 연간 1300명에 달하던 스웨덴의 교통사고 사망자가 2020년 200명대로 줄어든 것은 안전벨트와 에어백, 교통 인프라 발전 덕분”이라며 “2050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를 1명 미만으로 줄이자는 스웨덴 정부의 ‘비전 제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DMS 보급이 필수적”이라고 했다. 스웨덴이 비전 제로 목표를 달성하려면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현재의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스웨덴에선 운전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DMS뿐 아니라 조수석과 뒷자리 탑승자까지 주시하는 ‘탑승자 모니터링 시스템(OMS)’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동반 탑승자가 운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BMW, 아우디, 포르셰, 볼보 등에 DMS를 공급하는 스마트아이도 최근 OMS 매출 확대에 힘을 쏟고 있다. 기자는 지난달 27일 스마트아이 본사를 방문해 OMS가 탑재된 차량을 체험했는데 조수석에서 사과를 먹거나 전화를 받을 때, 흡연하는 시늉을 할 때 시스템이 해당 행동을 정확하게 포착하는 모습이었다.
크란츠 CEO는 “탑승자 상태 역시 안전한 운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OMS가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탄 경우 시스템을 통해 위험 행동을 감지하면 더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EU, 올해부터 신차 평가에 DMS 도입
교통 전문가 상당수는 국내에서도 운전자 모니터링 시스템(DMS) 보급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또 이를 위해 DMS 관련 법 규정 마련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졸음운전 방지를 위한 국내 기술력은 충분하다는 평가가 많다. 현대모비스는 2021년 세계 최초로 운전자의 뇌파를 분석해 피곤, 졸음, 부주의 등의 사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DMS를 개발했다.
하지만 보급에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GV70, GV80에 옵션으로 DMS를 도입한 정도다.
보급이 더딘 건 법적으로 도입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DMS가 의무화된 건 현재 레벨3 자율주행차뿐이다. 레벨3는 평상시 전방을 주시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의 자율주행차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막기 위해 DMS를 의무화한 것이다.
반면 일반 승용차의 경우 DMS를 도입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 그렇다 보니 완성차 업체도 가격 경쟁력 등을 이유로 전면 도입을 꺼리는 실정이다.
한국이 제도화를 두고 머뭇거리는 사이 유럽은 관련 규제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신차 안전성 평가 기관인 ‘유로엔캡’은 올해부터 평가 기준에 ‘운전자 모니터링’을 추가했다. 유로엔캡 구성 멤버인 스웨덴 산업부 교통국의 리카르드 프레데릭센 선임 고문은 “DMS 의무화가 다가오면서 향후 유럽에 출시되는 신차의 안전도를 평가할 때 DMS 기능을 반드시 보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박선홍 한국자동차연구원 주행제어기술부문 실장은 “유로엔캡에 관련 기준이 생긴 이상 유럽 시장에서 계속 차량을 판매하려면 DMS 기능 도입을 확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 졸음운전 등 운전자 부주의는 한국에서도 교통안전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8~2022년 발생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졸음운전과 전방 주시 부주의, 스마트폰 사용 등 ‘안전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비율이 66.8%에 달했다. 신호 위반(8.5%), 중앙선 침범(6.9%)보다 앞도적으로 높은 비율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음주운전은 사고 순간 속도를 줄이거나 핸들을 돌리면서 충격을 줄이기도 하는데 졸음운전은 마지막 순간까지 속도를 유지하다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다”며 “치사율이 높은 졸음운전을 막기 위한 첨단기술 도입에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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