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명지대학교에 붉은 포터 트럭 한대가 들어선다. 차에서 누군가 앞치마를 두르고 내린다. 2003년부터 일요일마다 전 국민에게 웃음을 준 KBS공채 개그맨 오지헌 씨(44)와 그의 아내 박상미 씨다. 두 사람과 NCMN 간사들은 능숙한 솜씨로 포터 뒷문을 열고 ‘청년밥차’를 준비한다. 오 씨는 기독교 단체 NCMN의 간사 자격으로 청년밥차를 운영하고 있다.
오 간사가 청년밥차를 끌고 왔다는 소식을 듣자 본격적인 밥차 개시 전에 명지대 학생들이 하나 둘 씩 모이기 시작했다. 톡방을 통해 동기들과 친구들을 부르는 학생도 있었다. 이후 오 간사가 능숙한 솜씨로 떡볶이와 어묵을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학생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피어났다.
오 간사가 음식을 나눠주니 신기하다는 듯이 보는 학생들과 사인을 받았다며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보는 학생들도 있었다. 대중들을 웃기던 개그맨 오지헌이었지만, 지금은 따뜻한 음식으로 청년들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오 간사’일 뿐이다.
청년밥차란?
오 간사는 “청년밥차는 어려운 시대에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운동”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오 간사가 소속돼 있는 NCMN에서는 다양한 5K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그가 운영하는 청년밥차도 5K 운동의 한 종류라고 했다. 5K 운동은 ‘어디서’, ‘어떻게’, ‘누구를 대상으로’가 정해져 있지 않고 주변의 5km 이내에 어려운 사람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돕는 운동이다.
오 간사는 수요일이 되면 또 다른 5K 운동의 일환으로 아내와 함께 서울역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을 진행한다. 그는 “수요일에도 나가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분들을 도와드리는 게 나의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역을 가지 않을 때는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MC를 보거나 행사를 진행하면서 나의 능력을 베풀고 있다”고 전했다.
청년들에 한정 짓지 않고 발 닿는 곳의 5km 이내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건네주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이유는
오 간사는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면서 청년들이 잘 이용하던 시설들의 비용이 많이 올랐다고 들었다”며 “대학교 안에 있는 구내 식당들도 거의 7~8000원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청년들의 어려움이 얼마나 심각한지 생각했다”며 ‘청년밥차’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런 트럭도 없이 한양대학교 앞에서 커피 100잔을 만들어 나눠주는 배식이었다”며 “하지만 청년들의 반응이 예상했던 것보다 미미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거리에서 배식을 하는 오 간사에게 청년들은 ‘무슨 기업 홍보차 왔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순수한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청년들을 위해 준비했는데 기업 홍보의 일환으로 왔냐고 했을 때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요즘 청년들은 받으면 무조건 줘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오 간사는 오기로라도 끈질기게 청년 배식을 이어갔다. 뜻을 함께하겠다는 사람들도 생겼다. 특히 NCMN대표인 김미진 간사는 1톤 트럭을 밥차로 개조할 수 있게 도와줬다. 제대로 된 밥차가 생기자 오 간사는 더 맛있는 음식들을 청년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고 청년밥차를 신청하는 대학들도 급격하게 늘어났다.
기업의 후원 받지만 비용은 십시일반
그러다 보니 대학교의 신청을 받고 처리하는 것도 ‘일’이 됐다. 이때 오레진이라는 기업이 나서서 이를 도왔다.
오 간사는 “기업에게 비용후원을 받지 않고 있다. 우리는 기업이 대학교들로부터 신청을 받을 때만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면서 “음식 제작이나 이동 비용은 청년밥차를 운영하는 우리들이 십시일반 내고 있다”고 전했다. 청년밥차를 운영하는 인원은 오 간사를 포함해 모두 10명 미만이며 이들은 십일조를 제외한 수입의 3.3%를 따로 지출해 음식 재료비와 이동비를 마련한다.
그는 대학으로 청년밥차를 끌고 갈때마다 2~300인분의 음식을 준비한다.
오 간사는 “예전에는 음식을 준비하면 좀 남아서 청년밥차를 운영하는 간사분들끼리 나눠 먹고 끼니를 때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미리 먹지 않으면 남는 게 없을 정도로 청년들이 많이 찾아주고 있다”며 “한 달에 한번 진행하던 청년밥차도 2~3번으로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청년밥차 로고의 의미
오 간사가 청년들에게 밥을 나눠줄 때 그의 옆에는 청년밥차의 정체성인 로고가 적힌 배너도 있었다. 로고에는 ‘그냥 와서 드세요’와 ‘배불러 OK, 베풀어 5K’가 적혀 있었다.
오 간사는 이와 관련해 “저 로고는 우리 아이가 생각해 냈다”면서 “학생들이 부담 없이 와서 먹으라는 뜻에서 저런 로고를 세워두게 됐다”고 전했다.
특히 ‘배불러 OK, 베풀어 5K’ 로고에는 오 간사의 깊은 뜻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이 많았고 지금은 역사상 가장 잘 사는 시기다”라며 “더 잘살게 됐는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나눔’은 줄어든 것 같아서 안타깝다. 청년 밥차에서 음식으로 나눔을 받았으면 사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눔’을 실천했으면 싶어 이런 로고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청년밥차
오 간사는 아내의 지지 덕분에 청년밥차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아내가 사회복지사 출신이어서 사람 돕는 걸 정말 좋아한다”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가 믿고 지지해 줘서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전했다.
오 간사 부부는 2008년 8월에 결혼해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있다.
그는 “딸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배운다고 한다. 5K 운동을 하면서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기도 한다”며 “5K 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 자신도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도 이렇게 나눔을 실천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아간다는 걸 딸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청년밥차는 계속된다
오 간사는 2003년 KBS 공채 18기에 합격해 개그맨의 길에 들어선 지 20년이 됐다. 데뷔하자마자 그는 KBS2 개그콘서트를 통해 “안녕~! 난 민이라고 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는 “다른 개그맨들보다 쉽게 개그맨이 됐고 쉽게 성공을 해버렸다. 물론 빠른 성공을 하고 30대 때는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오히려 그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지금 내가 받은 거에 감사하지 못하면 앞으로 계속 뭘 받아도 감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40대에 중반으로 넘어가고 있는 오 간사는 최근 50대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통 5~60대를 준비한다는 의미는 노후를 준비한다는 의미로 통용되지만, 오 간사에게 50대를 준비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다.
오 간사는 “50대를 준비한다는 뜻은 돈을 더욱더 모은다는 소리가 아니다. 앞으로도 청년들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더 준비한다는 뜻”이라며 청년밥차 5K 운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