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육은 시대 흐름에 맞는 시스템 전환이 시급하지만, 여전히 진학 위주 경쟁 교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두를 품는 청소년 정책은 초중등, 대학 교육의 방향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교육 혁신을 위한 노력이 일부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대세로 자리 잡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의 주력 교육 정책인 생태전환교육과 부산 동명대의 두잉(Do-ing) 교육은 한국 교육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제대로 시행되면 청소년 정책에도 많은 시사점을 줄 수 있다. 13일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순위를 가르는 한국 교육의 폐해를 극복하고 시대 흐름에 맞는 교육을 확산하기 위한 시도’를 주제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김현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장, 전호환 부산 동명대 총장이 나눈 좌담을 지상 중계한다.
-생태전환교육, 두잉 교육, 청소년 정책 연구가 한국 교육 개선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소개해 달라.
조 교육감=“생태전환교육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기후 위기 시대에 자연과 공존하면서 지속 가능한 삶을 사는데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다. 이 교육이 효과를 보려면 개인의 인식, 태도, 행동 등 생활 양식을 바꾸는 다층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교육청에서는 ‘손수건에서 태양광까지’라는 슬로건으로 ‘배우고-느끼고-행하고-나누고-말하고’ 등 생태전환교육의 5단계 전략을 세웠다. 생태 감수성, 자연 친화 감수성을 갖춘 인재 발굴에 초점을 맞춘다. 아이들은 이 과정에서 삶의 패턴이 변한다. 서울의 초중학생들이 한 학기나 1년 동안 혼자 또는 부모와 함께 농촌에 체류하는 농촌 체류 유학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전 총장= “두잉 교육은 체덕지(體德智)를 바탕으로 존중, 배려, 소통, 공정의 가치를 길러준다는 점에서 자연과 공존하는 역량을 길러주는 생태전환교육과 통한다. 시대 트렌드에 맞게 학생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능력을 키워주자는 것이 두잉 교육이다. 삼성전자가 내년 AI 기반 실시간 통역 통화 기능이 탑재된 핸드폰을 출시하는 것처럼 세상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앞으로 AI를 만드는 사람보다는 잘 활용하는 인간이 더 주목받을 것이다.”
김현철 원장= “근대 교육이 시작된 이래 배운다는 전제에는 가르침이 따라온다. 이것을 고민 없이 받아들인 것이 우리 교육의 병폐가 됐다. 두잉 교육은 청소년 정책 연구에도 큰 동기 부여가 된다. 입학 사정관 제도 하에서 체험 활동이 늘어났지만, 그냥 이벤트성이었다. 수준 높은 학습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도 생태전환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두잉 교육이 실천 엔진이 될 것 같다. 지역의 생태전환교육도 환경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광범위한 지속 가능 발전목표’와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는 대학 입학이 우선 순위여서 진학 위주의 초중등 교육과 대학교육의 연계성이 부족하다. 어떻게 하면 교육의 본령에 충실하면서 초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이 연속성을 강화할 수 있을까.
전 총장= “두잉 교육은 다양한 고교-대학 연계 공동교육 과정의 하나로 진행되고 있다.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고 각자의 재능과 장점을 인정받으면 낙오자가 줄고 더 열심히 산다. 두잉 교육을 대구, 제주의 일부 고교에서 채택 중인 IB 프로그램의 대학 판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
김 원장= “기계적 학습은 중고교 학생들의 대학 수학 능력 수준을 떨어뜨린다.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고 구색 갖추기로 되어 있는 교육 정책들이 피로감을 준다. 고교생에게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도입된 자유학기제도는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에서 가져왔는데 우리는 중학교 1학년으로 자유학기제를 보내버렸다. 제도가 대학 입시에 가장 영향을 덜 미치는 지대로 도망간 셈이다.”
조 교육감= “오랜 세월 1만 명을 먹여 살릴 1등 인재를 걸러내기 위한 평가가 반복되다 보니 인간주의적 평가 방식으로 바꾸기가 어렵게 됐다. 이 병목 지점에서 어떻게 우리가 태세 전환을 할 것이냐가 관건이다. 동명대처럼 학생의 능력을 존중받는 수준에서 최선의 교육 방법을 찾고 그 기반에서 대학 평가 제도까지 바꾸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두잉 교육은 소수가 아닌 전체를 위한 교육 방법론이다. 이런 철학이 청소년 교육 정책 연구에 어떻게 반영이 될 수 있을까.
김 원장= “지역, 마을과 같이 손잡고 교육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변화다. 당연히 이런 교육에 참여하는 마을 사람이나 지역 관계자들이 교육 전문성을 성장시키는 플랫폼도 있어야 한다. 마을 교육 등의 공동체 프로그램으로 지역 전문가들이 교육자로 역량이 성장하는 사례를 주목해야 한다.”
조 교육감= “마을이나 지역이 교육의 ‘협력적 로컬 생태계’가 되는 것에 공감한다. 청소년 정책 연구도 이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한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 교육은 학생들의 학교 안팎 위치에 따라 교육감 또는 지자체의 관할 책임이 달라져 정책 진행에 혼선을 빚는 점이 개선돼야 한다.”
전 총장= “융합 실천을 중심으로 청소년 교육, 진학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동명대는 1인 1스포츠, 1악기를 한다. 악기를 예로 들면 가르치지는 않고 학생 본인이 5명이든, 10명이든 합주해서 유튜브나 SNS 등에 올리면 학점을 준다. 합주하려면 서로 악기를 나누고 협의를 하는 등 소통과 공감을 한다. 유튜브도 3학점 과목이다. 스토리텔링 기획을 하고 재밌게 촬영, 편집해서 구독자를 모은다. 졸업할 때까지 영상 30개를 올려야 하고 조회 수 1만 건이 돼야 학점을 받는 식이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명산 30곳을 등산해서 인증하고 등산 기록을 리포트로 내면 3학점 준다. 등산 3학점에 글쓰기 3학점, 유튜브 3학점을 등산과 접목해서 딸 수 있다. 무학년, 무학점, 무티칭이 두잉 교육이다.”
-생태전환교육, 두잉 교육에서 가치 실현의 핵심으로 체육이 강조되고 있다. 청소년 교육 정책에서 체육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조 교육감= “체육은 학교 교육 제도가 형성된 이래 가장 오래된 기본 교육이다. 핀란드에 가보니 학교를 ‘무브 인 스쿨’로 표현하더라. 학교에서 아이들의 움직임, 운동, 트레이닝 등을 무척 강조한다. 교육청도 악기, 스포츠, 예술 한 가지씩 배우도록 권장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시즌 2, 다시 뛰는 아침’이라는 슬로건으로 틈새 시간 체육을 장려하고 있다. 특히 생태전환교육의 일환으로 생태스포츠를 정착시키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에 ‘자타공인’이라는 교육 과정이 있다. ‘자타공인’은 자전거 타기를 공교육 안으로 끌어왔다는 의미다.”
김 원장= “한국의 경우, 치열한 입시 경쟁을 위한 시간 싸움을 치열하게 하다 보니 체육이 지능 발달, 인지적 기능 향상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학생이나 부모나 잘 인식하지 못한다. 운동할 시간을 줘도 충분히 괜찮은데 부모들이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자식이 문제 하나 더 풀기를 원한다. 학습 시간에 대한 불안이 있으니 절대 체육을 안 시킨다. 선진국 중에서 이렇게 운동을 안 하는 나라는 없다. 입시 제도를 바꿀 수는 없지만, 운동에 조금 더 투자해도 손해 볼 것 없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 특히 여학생의 체육 참여율이 남자보다 현격히 낮다는 건 국가 전체가 고민할 부분이다.”
조 교육감= “맞다. 체육 활동에서도 젠더 편향성이 존재한다. 교육청이 진행하고 있는 여학생
스포츠 활성화 정책으로 ‘공차소서’가 있다. 여자 축구 활성화 프로그램이다. ‘공을 차자! 소녀들아! 서울에서’의 줄임말이다. 지금은 팀이 많아져 학교 대항 리그전을 할 수 있게 됐다. 야구 프로그램으로 ‘공치소서’도 있는데 아직은 축구보다 참여도가 적다.”
한국 교육 정상화의 걸림돌인 의대 쏠림 현상에 대해서는 세 사람 모두 우려의 시각을 나타냈다. 전 총장은 “어려운 문제다. 다만 지방 대학이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고려해 의대 인원을 늘리는 대학에서는 그만큼 다른 전공에서 입학 정원을 줄여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육감은 수직 서열화된 교육평가 체계에서 수평적 다양성 평가로의 전환이 학교에서 선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1등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까 이제는 사회가 누가 먼저 체념할까 예의주시하는 상태로 간다”며 “과잉 경쟁 사회에서 적정 경쟁 사회로라도 인식 자체에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선진국 경제력에서 아이들을 무모하게 경쟁시키는 것”에 물음표를 던졌다.
김 원장도 “과거에는 학벌에 매달렸다면 이제는 의대 다음에 학벌”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예전에는 기초과학을 안 한다고 논란이 됐는데, 이제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공학도 안 한다. 인문학은 바닥이다. 의대에 가고 싶은 건 알겠는데 지금 교육 구조가 다른 꿈을 못 꾸게 하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원장은 “히말라야처럼 올라갈 봉우리가 많아야 한다. 에베레스트가 있지만 주위엔 다른 봉우리도 많다. 안나푸르나, K-2 등이 곳곳에 있다”고 예를 들었다.
-정부가 2023년 ‘글로컬 대학 30’ 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교육과 대학이 지역균형 개발의 핵심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교육 발전 특구 등 육성책 추진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이 더 필요할까.
전 총장= “지방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대학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구조조정에만 방점을 찍은 것 같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번 글로컬대학 사업에 선정된 지방 대학은 5년에 1000억 원을 지원 받는다. 1년 200억 원인데 그 정도 예산으로 거점지방국립대가 바뀌겠나. 지방 사립대는 절실하게 필요한 돈일 수 있다. 일본은 ‘국제탁월대학’으로 5개를 선정했는데 2조 원 정도를 지원한다. 일본처럼 우리도 거점국립대학은 1년에 2000억 원 정도 지원을 해서 연구중심대학으로 육성하고, 글로컬대학은 지역 특색과 완전히 융합하는 대학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김 원장= “동의한다. 글로컬 대학 지원 금액이 커 보여도 실제로는 적다. 이 돈으로 혁신적으로 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선진국을 보면 국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나라의 최고 대학과 더불어 자랑할 만한 지역대학도 있다. 굳이 지방거점대학 역할을 안 해도 핵심이 되는 대학들이 있다. 이런 대학도 육성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류 대학 중심으로 흐르는 구조는 우리밖에 없다.”
조 교육감= “정부의 교육 발전 특구 핵심은 공교육 경쟁력을 높여 해당 지역 인재를 지역 대학과 기업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두고 초중등 교육 과정에 자율을 줬다. 정부가 강력한 지방 분권화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권역별로 자족적인 사회 경제 시스템이 자리 잡아야 교육도 혁신할 수 있다. 다만 자율학교나 특목고를 설립해 고교 서열화를 더 촉진하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그 다음이 대학 서열화 완화다. 국공립대 공동학위제 도입이 필요하다. 서울대 수준의 거점국립대학 육성도 마찬가지다. 국립대학끼리 서로 상생하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줘야 한다. 서울대는 상생의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통합국립대학 같은 구조 개혁도 시도해볼 수 있다고 본다.”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인 지방 교육 재정 교부금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교부금은 지역의 의무교육 기관을 비롯한 공립학교의 경비 일부분을 정부가 충당해주는 법정 재원이다. 학생 수가 감소하면서 초중고의 공교육 예산이 남아돌지 않느냐는 문제가 지적됐다. 대학 입장에서는 이 예산의 일부가 넘어오길 바라고 있다.
전 총장=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이 1971년 재정됐다. 당시보다 학생 수는 줄었는데 세수는 많이 올라갔다. 올해 교육 예산 중에 14% 만이 대학 관련 예산이다. 대학은 학생들을 피날레 교육을 시켜 산업 전선에 내보낸다. 그런데 대학에 지원되는 예산 비율은 OECD 평균 이하다. 바꿔야 한다. 초중등 교육과 이어지는 대학 교육의 근본적인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도권 대학 등록금 자율화, 대학 보유 자산에 대한 세제 완화 등이 따라와야 한다. 예일대는 지난해 자산을 굴려 15조 원을 벌었다. 대학에 예산을 많이 배정한다는 것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 인기 없는 정책일 수 있다. 그래도 과감한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폐교하고 싶은 대학도 퇴로가 열린다. 학령인구에 맞는 적정 대학을 남겨두고 그 대학을 살리기 위해 투자를 한다고 하면 비판이 안 나올 것이다.”
조 교육감= “고등교육 예산은 OECD 평균에 못 미치는데 초등교육 예산은 상당한 수준에 있다. 15년 넘게 대학 등록금이 동결돼 있다 보니 어떤 형태로든 정책 전환이 돼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단지 초중등 교육으로 가는 재정을 떼서 대학 지원을 하는 건 교육감들이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의 초중등 교육 재정 여유는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세수가 많았던 것에도 일정 부분 기인한다. 그런데 올해는 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로 내국세 기준으로 주어지는 교부금이 작년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 교육 재정이 압박받고 있다. 서울도 지난해에 비해 거의 2조 원 가까이 재정이 축소됐다. 시도에서 걷는 시도세 중에 일부를 교육청에 법정 전출금으로 주는데 이것도 50% 감축하려고 한다. 시도교육감협의회는 예산을 당장 미래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방과 후 수업 등 학부모 부담 경감을 위한 비용도 더 있어야 하고, 전체적으로 미래 학생 개별 맞춤형 교육을 위해 여전히 배가 고픈 상황이다.”
김 원장= “예산을 형식적으로 ‘N 분의 1’로 쪼개는 건 아닌 것 같다. 초중등 교육도 예산이 많으면 좋겠지만 혁신을 전제로 갈 길을 찾는 게 우선이다. 대학도 힘들다고 링거 주사 놔달라는 식으로 지원을 요구하거나 받으면 안 된다. 이번 기회에 생태를 바꾸는 실행 가능한 혁신 로드맵을 먼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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