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강제징집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각 900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황순현)는 22일 오후 이종명·박만규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애초 원고들은 각 3억원의 위자료를 청구했지만 재판부는 9000만원만 받아들였다. 이 밖에 원고들의 나머지 청구는 모두 기각하고 소송비용은 원고와 피고 반씩 부담하도록 했다.
원고들은 1970~1980년대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 시절 정부의 강제 징집으로 군대에 끌려가 고문·협박·회유를 통해 전향돼 프락치로 활용됐다. 프락치는 특수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체나 분야에 들어가 본래 신분을 숨긴 채 활동하는 정보원이다.
특히 프락치 강요 공작은 전두환 정권이 ‘녹화 공작’을 추진하던 보안사 심사과 폐지 후에 ‘선도 업무’라는 명칭으로 1987년까지 지속된 사건으로 보안사 문건을 통해 드러났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과화해위)는 지난해 조사에 착수해 강제징집 및 녹화·선도공작 피해자 2921명의 명단을 확보하고 이 중 182명을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했다.
아울러 강제징집·녹화공작·프락치 강요 피해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피해 회복을 위한 절차를 마련해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진실과화해위 결정과 증거에 의하면 원고들이 불법 구금을 당하고 폭행·협박을 받고 양심에 관한 사상 전향을 강요받고 동료의 동향을 파악해 보고하며 프락치 활동을 강요받은 사실과 이후에도 감시·사찰 받은 사실들이 넉넉히 인정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로인해 원고들이 육체·정신적으로 고통받았음이 경험칙상으로 인정되면서 국가는 위자료 지급에 의무가 있다고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진실과화해위 결정에 기초해 권리를 행사하는 원고들에게 국가가 새삼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며 배상을 거부하는 것은 권리 남용에 해당돼 허용될 수 없다”며 “국가가 피해를 회복하겠다는 진실 규명 결정을 했음에도 다시 소멸시효 완성을 내세워서 책임을 멸하려는 것은 용납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이날 선고를 마치고 기자회견을 통해 “인권 최후 보루인 법원이 국가의 불법 행위를 인정해 줘서 참으로 다행스럽다”며 “다시는 우리나라에 저 같은 피해자들이 없도록 법원이 내린 엄중한 판결이 우리 사회 경종을 울렸으면 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씨 측 변호인은 “법원에서 인정한 9000만원이 국가에게 다시는 이런 행위 재발을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져볼 만한 금액인지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에 상당한 금액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며 “당사자분들과 논의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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