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성북구 숭곡중 2층 조리실. 창가를 따라 나란히 3대의 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올 8월 설치된 ‘급식 로봇’ 4대를 통제하는 PC다. 숭곡중 조리 종사원이 버튼을 누르자, 로봇에 달린 양팔의 분당 회전 횟수, 방향, 인덕션 온도 등이 설정됐다. 이날의 급식 메뉴는 치킨·볶음밥·김치볶음·소고기탕국.
천장에 닿을 듯 키가 큰 로봇이 양팔로 통을 집어 든다. 첫 번째 메뉴인 치킨을 만드는 튀김 로봇 ‘숭바삭’이다. 숭곡중 학생들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다.
통 안에는 튀김옷을 묻힌 닭 조각들이 한가득 담겨 있다. 로봇이 통을 뜨겁게 달궈진 기름에 담그자 기름이 사방으로 튄다. 열기에 급식실 내부가 금세 뿌옇게 변했다. 그래도 걱정이 없다. 스테인레스 재질의 급식 로봇 덕분이다. 김혜영 영양사는 “튀김을 한 날엔 조리 종사원들이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였다며 “(로봇 도입으로) 조리 업무 강도도 줄고, 음식 맛 자체도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전국 최초로 ‘급식 로봇’이 도입된 숭곡중에서 22일 로봇이 만드는 급식 조리과정을 공개하는 시연이 이뤄졌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급식실 조리사들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업무 강도를 낮추기 위해 시범적으로 숭곡중에 한국로보틱스가 제작한 급식 로봇 4대를 들였다. 조리 중에 발생하는 미세분진인 조리흄이 폐 건강을 해친다는 지적이 계속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실제 폐암 등으로 인한 학교 급식 종사원의 산업 재해 승인 누적 건수는 94건에 이른다.
급식 로봇이 도입됐어도 숭곡중 조리사 6명과 영양사 1명은 그대로 일한다. 전 처리, 소분, 로봇 청소, 레시피 개발 등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대신 조리사 업무 중 가장 힘들고 어려운 볶음, 튀김 등 업무를 로봇에 이관했다.
그동안 학생, 교직원 730명이 먹는 급식은 온전히 7명이 책임져야 했다. 우종영 한국로보틱스 대표는 “급식실에 도입된 로봇은 사람과의 협업이 필요한 로봇”이라며 “음식을 대량으로 조리할 때 사람이 하기 힘든 부분을 로봇이 도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학생들 반응도 긍정적이다.
숭곡중 학생회장인 조형찬 군은 “처음에는 조리사님들 손맛이 빠져 맛없을 줄 알았는데 튀김이 바삭바삭하고 맛있다”며 “기술 가정 시간에 로봇을 배워도 와닿지 않았는데, 급식에 도입된 걸 보니 로봇이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걸 체감했다”고 말했다. 부회장 한다희 양도 “부모님께서도 조리사 분들이 힘드실 것 같다고 걱정하셨는데, 로봇 도입 소식을 들은 뒤 일을 덜 수 있게 돼 다행이라며 좋아하셨다”고 했다.
만일의 사고를 대비한 안전장치도 장착됐다. 사람이 ‘급식 로봇’에 접근하면 센서가 동작을 감지한다. 자동으로 속도를 늦추거나 아예 작동을 멈춘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숭곡중 사례를 가지고 시스템을 보완하면 (다른 학교로) 확대하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것 같다. 조리 종사원 인력이 부족한 학교를 중심으로 (급식 로봇이 도입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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