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NS를 통해 알게 된 남성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A 씨(25)는 “심리적으로 지쳐 있을 때 다정하게 접근해 오는 걸 보면서 나도 모르게 경계심이 허물어졌다”며 당시를 돌이켰다.
A 씨는 올 4월 SNS를 통해 알게 된 남성과 한 달 넘게 연락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졌다. 만난 적도 없었고, 전화번호도 몰랐지만 SNS 메시지로 위로를 받으며 친밀감을 느꼈다고 했다. 그러다 5월경 “당장 환전을 해야 하는데 계좌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듣고 2800만 원을 건넸는데 이후 남성은 SNS 계정을 삭제하고 잠적했다. 남성을 경찰에 신고한 A 씨는 “대출받아 마련한 돈도 잃었고 배신당했다는 마음의 상처도 남았다”며 울먹였다.
● 최근 급증한 ‘로맨스 스캠’ 범죄
SNS 등을 통해 이성에게 접근해 호감을 얻어낸 후 돈을 뜯어내는 ‘로맨스 스캠’이 급증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 국정원 111콜센터에 접수된 로맨스 스캠 신고는 총 111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확인된 피해액만 48억6000여만 원에 달한다.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18년 9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39억6000만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10월까지만 해도 2018년의 5.2배에 달한다.
피해액이 10억 원 미만이었다가 2021년경부터 급격히 늘었는데 이를 두고 법무법인 화랑의 이지훈 변호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온라인 데이트 애플리케이션 등이 급성장하는 등 비대면 접촉 문화가 일상화되면서 로맨스 스캠 범죄도 급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로맨스 스캠은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대를 노리고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김모 씨(24)도 올해 8월 파혼과 소송이 겹치면서 우울한 상태에서 SNS를 통해 알게 된 남성에게 심리적으로 의지하다 7200만 원을 뜯겼다.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 씨(42)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 씨(27)도 과거 심리적으로 취약한 상태인 피해자를 상대로 여러 차례 로맨스 스캠 사기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 전문가 “피해 큰데 구제 방법 마땅치 않아”
문제는 경제적 심리적으로 타격을 입은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사기범에게 애정을 느끼고 속았다’는 주위의 시선 때문에 힘들어하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3일 서울 마포경찰서에선 로맨스 스캠 사기를 당한 여성이 진정인 조사를 받은 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경우 통신사기피해환급법 등에 따라 금융회사에 계좌 입출금 금지를 요청하면 즉각 지급 정지를 할 수 있다. 전자금융거래법 적용을 받아 처벌 수위도 높은 편이다. 반면 로맨스 스캠 범죄는 일반 사기로 처벌하기 때문에 처벌 수위가 상대적으로 낮다.
제도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2020년 8월 ‘다중 사기 범죄 방지법’이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에 계류 중이다. 사기 피해자를 다수 변호한 나현진 변호사는 “로맨스 스캠 범죄자는 사람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해 사기를 친다는 점에서 악질적”이라며 “보이스피싱과 유사한 수준으로 사기범을 처벌하고 피해 구제 방안을 마련해야 계속 피해가 급증하는 걸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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