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행정전산망 마비 사태 이후 정부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불과 일주일 사이에 네 번째 장애가 발생하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정부 전산망을 전반적으로 점검해 사고 발생 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까지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날 공공 전산망 마비를 ‘사회 재난’에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 정부24, 나라장터에 이어 모바일 신분증까지
이날 오후 2시경부터 접속 오류가 발생한 행정안전부 ‘모바일 신분증 서비스’ 먹통 사태로 시민들은 불편을 겪었다. 직장인 김모 씨(42)는 “은행 업무를 볼 때마다 모바일 신분증을 이용했는데 갑자기 접속이 안 돼 다시 실물 신분증을 가지러 가야 했다”며 “정보통신(IT) 강국이라더니 벌써 몇 번째 장애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날 접속 장애는 17일 발생한 공무원 행정전산망 ‘새올’과 온라인 민원 서비스 ‘정부24’ 전산망 마비 이후 벌어진 네 번째 사고다. 19일 정부의 공공 전산망 정상화 발표 이후에도 22일 주민등록통합행정시스템이 서버 용량 문제로 20분 간 접속 장애를 겪었다. 23일에는 조달청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한 독일 인터넷주소(IP주소)가 다량 접속하면서 트래픽 오류가 발생했다.
정부는 24일 네 번째 장애 사고 발생 이후 “모두 다른 원인으로 발생한 사고가 우연히 계속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전산망 활용도가 높아진 만큼 전반적인 체계 정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전산망 오류로 인한 국민들의 불편 체감도가 훨씬 커졌다”라며 “이번 기회에 전산망 사고 후 빠른 원인 탐지와 문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접속 오류 사태로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3 대한민국 정부 박람회’도 차질을 빚었다. 행정안전부가 지정한 모바일 신분증 플랫폼 운영 기관인 한국조폐공사가 행사장 내에 체험관 부스를 마련하고 방문객에게 모바일 신분증 등을 발급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다 중단한 것이다. ‘정부 혁신, 디지털 플랫폼 정부와 함께’라는 주제로 ‘전자 정부’를 홍보하기 위해 열린 행사였지만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 사회 재난에 ‘공공 전산망 마비’ 추가
전산망 오류 사태 직후 영국 출장으로 자리를 비웠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귀국하자마자 ‘지방행정전산서비스 개편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선 여전히 ‘새올’과 ‘정부24’ 장애 사태에 대해 “원인을 특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보고가 이어졌다.
정부는 사회 재난에 공공 전산망 오류를 추가해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만들기로 했다. 행안부는 이르면 내년 6월까지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시행령을 개정해 ‘국가기관의 전산망 마비’를 ‘재난 및 사고 유형’에 명시한다는 계획이다. 해당 시행령에는 현재 민간 기업에 한정되는 ‘정보통신사고’, 금융 기관에 해당하는 ‘금융 전산 및 시설 사고’만 포함돼 있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주관기관과 관계기관, 소속·산하기관들은 각각 기관 성격에 맞는 매뉴얼을 만들어 재난 예방부터 복구까지의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부산=김화영 기자 run@donga.com 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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