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도 구매” 불법 마다않는 대행업체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27일 03시 00분


경조사-행사 알바 일감 급감하자
변호사 사칭 등 불법 암암리 수행
‘적발땐 모르고 그랬다’ 발뺌 조언도
전문가 “사기방조-사칭 처벌 가능”

“마약도 구해 달라고 하면 대신 사다 드립니다.”

결혼식 하객 참석 등 ‘역할대행’을 전문으로 하는 A사 대표는 이달 초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의뢰가 끊기다시피 해 돈이 되는 건 다 하고 있다”며 “사기범의 의뢰라도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했다.

올림픽 펜싱 은메달리스트 남현희 씨(42)의 재혼 상대였던 전청조 씨(27)가 역할대행 업체를 통해 가짜 기자와 경호원 등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불황에 빠진 역할대행 업체 일부가 불법행위도 불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불법 아랑곳 않는 역할대행 업체


2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상당수의 역할대행 업체가 마약류 구매, 경찰이나 변호사 사칭, 투자 유치를 위한 바람잡이 등 위법 소지가 있는 업무도 승낙하고 있었다.

이달 7일 기자는 한 업체에 전화해 “투자금 유치 설명회를 하는데 옆에서 바람잡이를 해줄 수 있는, 부유한 이미지의 연기자가 필요하다”고 의뢰했다. 이 업체에선 “한 명당 40만∼50만 원 선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이미지가 굉장히 고급스럽고 유능하신 분들로 배정해드리겠다”고 했다. 또 “연기자분들 프로필도 미리 보내드리고 말을 맞추기 위해 사전에 통화도 시켜드리겠다”고 덧붙였다.

다른 업체는 “전국에 걸쳐 아르바이트생들이 있는데 지역·업종·성별로 나눠서 관리 중”이라며 “원한다면 변호사, 경찰 사칭도 문제없다”고 했다. 기자가 “그러다 잘못되면 처벌받지 않느냐”고 묻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르고 그랬다’, ‘연기를 하라는 줄 알았다’고 발뺌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 코로나19 이후 경조사 줄어 일거리 급감


2000년대 초 등장한 역할대행 업체들은 하객 아르바이트 등을 주로 맡았다. 그런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으로 진행되는 경조사가 줄고 각종 행사까지 축소되면서 일거리가 급감했다.

한 역할대행 업체 관계자는 “하객·조문객 대행이 가장 많았는데 코로나19 이후 경조사 수도 줄고 규모도 축소되면서 먹고살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한풀 꺾인 후에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는 19만1700건으로 전년 대비 0.4% 줄었다. 연간 결혼 건수는 10년 사이 41.4%나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 씨와 같은 사기범의 행각에 동원되는 것은 물론이고 마약류 구매 대행까지 암암리에 수행하는 것이다.

고객들도 최근 불법행위를 거리낌 없이 요구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한다. 한 역할대행 업체 대표는 “의뢰인들이 돈을 더 주겠다며 무리한 요구를 할 때가 많다”며 “불법 의뢰도 가리지 않는 업체가 늘어서 심부름센터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역할대행 업체들의 불법행위가 형법상 사기방조나 공무원자격 사칭 등의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법무법인 청 소속 곽준호 변호사는 “타인의 사기 행위를 인지한 상태에서 암묵적으로라도 도와줄 경우 사기방조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사기나 불법 우려가 있는 의뢰가 접수될 경우 함께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갖고 대행업체 측에서 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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