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뒤 피의자를 불법 체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경찰관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보고서에 피의자 체포 사유 관련 내용을 제대로 적지 않은 점은 인정되지만 거짓 내용이 있다거나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한다는 인식이 경찰관에게 없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직권남용체포, 허위공문서작성, 허위작성공문서행사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지법에 돌려보냈다고 27일 밝혔다.
부산의 한 경찰서 소속 경찰관 A씨는 베트남 국적 피의자 B씨의 특수상해 혐의 사건을 맡고 있었다. B씨는 자진 출석 의사를 밝혔지만 다른 사건 수사로 외근 중이던 A씨는 “오늘은 조사가 어려우니 다음에 오라”며 출석을 보류시켰다.
그런데 A씨는 수사보고서를 작성하면서 ‘B씨가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 도주한 상태다. 피해자와 회사 관계자가 B씨에게 여러 번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고 소재 불명이다’라는 취지로 기재했다. A씨는 이처럼 허위로 작성한 수사보고서를 토대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B씨를 체포한 것으로 나타났다. 1심은 무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허위공문서작성죄, 허위작성공문서행사죄, 직권남용체포죄가 모두 인정된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수사보고서에 B씨의 자진 출석 의사 표명이나 출석 보류 경위에 관한 내용을 빠뜨리고 B씨가 도주했다거나 소재 불명 상태에 있다고만 기재한 것은 허위에 해당한다”며 “A씨에게 허위성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다시 무죄 취지로 판단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A씨가 수사보고서 작성 당시 B씨 체포 사유와 관련한 내용을 상세하게 기재하지 않은 점은 인정된다”면서도 “수사보고서에 거짓이 있거나 A씨에게 허위공문서작성에 관한 확정적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통역인을 통해 자진 출석하겠다고 밝힌 B씨의 의사가 진실한 것인지 확인하기 어려웠던 점도 고려했다. 실제 B씨는 출석이 보류된 이후 경찰서에 자수하거나 부산의 거주지로 복귀하지 않고 경기도로 잠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은 “수사보고서가 허위라고 단정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허위공문서 작성의 고의를 인정하기도 어려운 이상 이를 전제로 한 직권남용체포 혐의가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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