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없다며 경찰 초과근무 제한…“돈 안 받고 일하란 셈”

  • 뉴시스
  • 입력 2023년 11월 28일 12시 17분


수당 대신 휴가…"사람 없는데 어떻게 쉬냐"
"경찰청, 예산 운영 실패 책임 경찰에 전가"
경찰직장협의회, 예산 부족분 데이터 요구

경찰청이 예산 소진을 이유로 전국 경찰에 사실상 ‘초과근무 제한령’을 내리자 일선 경찰 사이에선 사실상 무급 근로를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수당 대신 휴가를 주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해 막상 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28일 경찰에 따르면 경찰청은 지난 6일 초과근무를 최소화하라는 취지의 ‘근무혁신 강화계획’을 각 시·도경찰청과 부속기관에 보냈다. 올해 흉기 난동 범죄로 인한 특별치안활동과 집회·시위 대응으로 초과근무가 늘어 수당 예산이 빨리 소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선에선 연말연시 집회와 행사가 많은 데다 진행 중인 수사가 있어 초과근무를 줄이기는 어렵다는 반응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우리 직원들은 초과근무를 해도 수당 신청을 아예 안 올리는 분위기다. 돌아가는 사건이 많다 보니 근무를 안 할 수는 없다”며 “예산이 부족해서 수당을 미지급한 기억은 없는데 이런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다른 수사부서 관계자도 “수당 대신 대체휴무를 쓰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못 쓸 것 같다”며 “초과근무 신청을 제한해서 돈 안 받고 일하는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

기동대 소속의 한 경찰은 “연초에 사기 진작 차원에서 예산을 급하게 썼다가 연말이 되니 예산이 부족해서 직원들 초과근무를 제한하는 것 같다”며 “기동대는 대규모 집회가 있을 때 출동률을 제한하게 된다”고 전했다.

지난 23일 경찰 내부망에는 “인원이 없어 동료가 휴가를 가면 누군가 대신 근무해야만 하는 현장을 만들어 놓고 자원 근무자에게는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한다”며 “현장 경찰관들과 말장난하는 거냐”는 규탄 글이 올라왔다.

전담경찰직장협의회도 22일 내부망에 ‘초과근무 수당 삭감, 경찰청장의 책임이다’라는 입장문을 올렸다. 단체는 “경찰청은 예산 운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숨긴 채 14만 경찰관에 손실을 전가하고 있다”며 “경찰청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경찰청은 전국 경찰직장협의회(직협)와 초과근무 시간제한과 관련한 실무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직협은 경찰청에 구체적인 예산 부족분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민관기 직협 위원장은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본청에 구체적인 예산 부족분과 초과근무 제외 관련 자료를 데이터로 달라고 요구했다”며 “초과근무 가능 시간을 일괄적으로 20시간씩 줄이는 방침을 10시간씩 줄이는 것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초과근무 수당이 부족하다는 건 올해 처음 본다”며 “경찰은 연가 보상도 최대 6일밖에 안 되는데 수당 대신 휴가를 저축해 준다고 한다. 연말이 되면 소멸되는데 무슨 소용이냐”고 덧붙였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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