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병원에 직접 가지 않고 전화나 화상 통화로 진료받는 ‘비대면 진료’ 이용 대상이 대폭 확대된다. 최근 6개월 이내에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있는 병원이라면 질병 종류에 관계 없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휴일과 야간에는 연령이나 지역과 무관하게 누구나 비대면 초진이 가능해진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보완 방안을 1일 발표했다. 6월부터 시행 중인 시범사업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는 환자의 폭이 너무 좁아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기존 시범사업에선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재진 환자 기준은 ‘30일 내에, 같은 의료기관에서, 같은 질병으로 대면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였다. 고혈압, 당뇨 등 11가지 만성질환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대면 진료 후 1년까지 비대면 진료를 허용했다.
반면 이번 개선안에선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이 △‘모든 질병’에 대해 △‘대면 진료 후 6개월 이내’로 대폭 완화됐다. 대면 진료를 받았을 때와 같은 질병에 한해서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제한도 삭제됐다. 예를 들어 6개월 전에 감기로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있는 병원에서 장염으로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고혈압 등 11가지 만성질환의 비대면 진료 가능 시한(1년) 또한 6개월로 통일된다.
주말과 공휴일, 평일 밤 시간대에는 대면 진료를 받은 적 없는 병원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사실상 ‘비대면 초진’이 전면 허용되는 것이다. 기존에는 소아·청소년만 가능했는데, 전체 국민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번 개선안은 15일부터 적용된다.
비대면 진료 완화… ‘의료취약지’ 시군구 98곳선 제한없이 허용
비대면 진료 대상 확대 비대면 초진, 기초단체 40%서 가능… 비대면 진료 뒤 약은 약국서 받아야 의사-약사들 “진단-처방 한계” 반발… 소비자단체 “약 배송 빠져 반쪽짜리”
비대면 진료는 주변에 의료기관이 적어 의사와의 대면 진료가 불편한 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용한 제도다. 정부는 6월 시범사업을 시작하며 섬과 벽지 주민에 한해 비대면 초진을 허용했는데, 대상이 지나치게 좁아 실익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예를 들어 인구가 약 3000명인 전남 신안군 임자도는 육지에서 약 20km 떨어져 있지만, 다리로 이어져 있다는 이유로 비대면 초진 대상이 되지 않았다.
● 98개 시군구에서 비대면 초진 허용
이러한 지적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1일 비대면 초진이 가능한 의료 취약 지역의 범위를 98개 시군구로 대폭 확대했다. 이는 국내 기초자치단체의 약 40%에 해당한다. 수도권에서도 경기 동두천시 여주시, 인천 옹진군 등 7개 시군 주민은 아무 제한 없이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정부는 또 휴일과 야간에는 사는 지역이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게 했다. 휴일과 야간에는 평소 다니던 병원이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아 재진만 가능하게 할 경우 비대면 진료를 받기가 어렵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에 따라 평일에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주말에는 토요일 오후 1시 이후부터 비대면 초진이 가능해진다. 법정 공휴일에도 비대면 초진을 받을 수 있다.
이 조건에 해당한다고 해서 무조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의료진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위해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조건을 충족하더라도 환자에게 대면 진료를 요구할 수 있다.
오히려 제한 규정이 강해진 부분도 있다. 기존에는 마약류와 오·남용 우려 의약품을 제외하고는 모든 약을 처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달 15일부터는 사후피임약도 비대면 진료처방 제한 약물로 추가했다. 사후피임약은 고용량 호르몬이 포함돼 있어 정확한 용법을 지켜 복용하지 않을 경우 부작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부작용 우려가 있는 탈모, 여드름, 다이어트약 등도 추가로 비대면 처방 금지 약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의약계 ‘안정성 우려’ 반발… “반쪽짜리” 지적도
비대면 진료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기간에 국민 4명 중 1명이 이용하며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감염병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일 때는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 말 코로나19 위기 경보가 ‘경계’로 하향되며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복지부는 “비대면 진료가 이미 정착된 만큼 중단할 수 없다”며 다시 6월 시범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의사와 약사 단체에선 비대면 진료 확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비대면 진료로는 정확한 진단과 처방에 한계가 있어 환자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성명을 내고 “이번 대책은 의료의 질적 향상과 환자 건강권 보호가 아닌 ‘편의성’만을 유일한 근거로 삼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한약사회도 같은 날 성명을 통해 “많은 전문가의 반대에도 정부가 일방적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확대를 강행했다. 즉각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비자단체 등에선 시범사업 개선안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대면 초진 범위는 확대됐지만, 약 배송은 섬·벽지 주민과 감염병 환자 등 극히 일부에게만 허용되기 때문이다. 의료취약지 98개 지역민도 약은 직접 약국에서 수령해야 한다. 의료취약지는 병원뿐만 아니라 약국에 가는 것도 불편한데, 비대면 초진을 받더라도 약을 타러 약국에 직접 가야 한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 한편 국회에는 임시방편 격인 시범사업이 아니라 비대면 진료를 정식으로 법제화하는 법안이 5건 계류돼 있다. 하지만 의약계의 반대에 부닥쳐 사실상 21대 국회 임기 내에 처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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