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기후기금’ 출범했지만… “개도국 승리” vs “너무 적은 금액”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5일 03시 00분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 UAE-독일 등 5573억원 기부 약속
“피해 규모에 비해 적어” 비판도… 한국은 참여 여부 아직 안 밝혀
■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 점검… “전 세계 ‘파리협정’ 이행 낙제점”
한국, 탄소배출량 세계서 9번째… 재생에너지 설비 확대 등 협약

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바이=AP 뉴시스
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개최된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석한 각국 지도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두바이=AP 뉴시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다. 과거 산업화로 탄소를 대량 배출하며 경제적 수혜를 본 선진국들이 기후변화 피해가 큰 개발도상국에 금전 보상을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당초 총회 막판까지 논의가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개막 첫날 극적으로 출범을 선언하며 예상외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COP28 의장국인 UAE와 독일은 각각 1억 달러(약 1300억 원), 영국은 5000만 달러(약 650억 원), 미국 일본은 각 1750만 달러(약 230억 원)와 1000만 달러(약 130억 원)를 내놓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1억4500만 달러(약 1900억 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UAE의 술탄 알 자베르 의장은 “오늘 우리는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했지만 한편에서는 기금 출범을 그저 ‘장밋빛’으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을 비롯해 12일까지 열리는 COP28에서 주목할 만한 논의 내용과 한국은 어떤 입장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 “결국 선진국 원하는 대로” 비판도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의 출범 여부는 지난해 COP27에서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였다. 1990년대부터 ‘탄소 배출의 책임이 있는 선진국이 개도국에 피해를 보상한다’는 아이디어는 논의돼 왔으나, 30여 년간 기금 관리 기관이나 분담금 배분, 수혜국 선정 등 합의 도출이 쉽지 않았다. 영국 BBC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한 30년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기금의 지원 액수나 방식이 결국 선진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결정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단 기금 액수는 국가별로 구체적인 할당량을 정하지 않고 자율 기부에 맡겼다. 앞서 기부금을 밝힌 국가들 외 다른 국가들도 추가로 이어지는 총회 기간 중 금액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또 기금은 우선 세계은행에 보관하기로 했는데, 이는 처음에 개발도상국들이 “세계은행 총재를 임명하는 미국이 은행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며 반대하던 내용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초기 자금으로 약 4억2900만 달러(약 5573억 원) 수준이 확보됐는데, 기후 관련 피해로 2030년까지 개발도상국에서 연간 2800억∼5800억 달러(약 377∼754조 원)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 해결해야 할 문제의 규모에 비해 아주 적다”며 “특히 (가장 큰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발표한 금액은 당황스럽다”는 환경단체들의 반응을 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 역시 “개발도상국들은 마지못해 받아들인 방안”이라며 “추가적인 기부 약속이 발표돼 기금 규모가 의미 있게 커질 수 있는지 평가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 ‘파리협정’ 첫 숙제 검사는
이번 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과 함께 또 하나 관전 포인트로 꼽히는 것은 ‘전 지구적 이행 점검’이다. 2015년 프랑스에서 열린 COP21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에 대한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의 이행 실적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처음 공개한다.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최소한 섭씨 2도 이하로 제한하고, 1.5도 이하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내용이다.

앞서 9월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국(UNFCCC)은 관련 내용을 종합보고서 형태로 발표한 바 있다. 사무국은 “파리협정 목표에 부합하는 결과를 내놓은 국가는 없었다”고 밝혔다. 성적표 초안에서 사실상 낙제점을 받은 셈이다. 올해 유엔 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2027년 안에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를 넘을 가능성이 66%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COP28에서는 9월 보고서를 토대로 고위급 회의를 통해 결정문을 내놓는다. 기후 위기에 대해 과거 책임을 얼마나 명시할 수 있을지, 결정문이 어느 정도 규제로 작용할 수 있을지 등이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45%를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 러시아 지도자들이 총회에 불참하면서 얼마나 의미 있고 구속력 있는 내용이 나올 수 있겠냐는 우려가 제기된다.

● 탄소 배출 9위 한국, 동참 압박 예상
3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한 환경 운동가가 지구를 
심폐소생하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뒤편 운동가들이 ‘지금은 지구 위기 상황’ ‘화석연료 끝’ 등의 문구를 들고 있다.
3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가 열리고 있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한 환경 운동가가 지구를 심폐소생하는 액션을 취하고 있다. 뒤편 운동가들이 ‘지금은 지구 위기 상황’ ‘화석연료 끝’ 등의 문구를 들고 있다.
최근 전 세계 탄소배출량 10위권 안팎을 넘나들고 있는 우리나라 역시 이번 COP28에서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 기부를 비롯해 국제 연대에 동참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제과학자그룹 ‘글로벌 카본 프로젝트(GCP)’가 1850∼2020년 배출된 탄소배출량을 추산한 결과 한국도 과거 배출 책임 지분에서 1.1%를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한 해 동안 연료를 태워 배출한 탄소량은 597메가t으로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많았다.

그러나 한국은 그동안 ‘중재국’으로서 역할을 강조하며 기후 대응 책임에 대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 참여 여부나 기부 액수도 정하지 않은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이제 국가들의 참여 방식이나 금액 등 구체안에 대해 논의가 시작되는 상황이라 아직 입장을 정하진 않았다”며 “상황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1일 COP28에서 추진 중인 ‘재생에너지 설비 3배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주요 5대 이니셔티브에 동참 의사를 밝혔다. 2일 의장국 UAE에 따르면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3배로 확대하자는 협약에 지금까지 117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화석연료 퇴출에 반대해 온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현재까지 참여국 명단에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도 총회 개막 전까지는 동참 여부를 밝히지 않았었다. 기후 분야 싱크탱크인 ‘기후 솔루션’에 따르면 한국의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4.7%(2021년)로 세계 평균(28.1%)에 비교하면 매우 작은 비율이다.

이니셔티브는 강제성을 띠진 않지만 국제 약속에 동참한 만큼 국내 후속 대응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기후 솔루션 관계자는 “한국은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낮다”며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등을 조만간 만들어질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반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1월 확정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30.2%에서 21.6%로 낮춘 바 있다.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선진국 기후기금#co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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