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최초로 지정된 소아응급실도 필수의료 인력 부족으로 축소 운영되게 되면서 지역 의료 공백이 우려되고 있다.
5일 순천향대 천안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은 앞으로 주 2일은 소아응급실에 신규 환자 수용이 불가하다고 지역 소방당국 등에 지난 4일 알렸다. 2010년 9월 서울아산병원과 함께 전국에서 처음으로 소아응급실로 지정된 후 13년간 365일 24시간 진료를 이어왔는데, 인력 부족으로 당분간 월·화요일에는 환자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소아응급실 소속 의사 7명 중 4명만 남아 진료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게 병원 측 입장이다. 지난달 말 이 병원 소아응급실 의사 중 1명이 병원을 떠난 데 이어 남은 인력 중 2명도 사의를 밝히거나 장기 휴가를 냈다.
의료계에서는 중증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맡아온 이 병원이 주 2일 휴진하게 되면서 충청권의 소아 응급 환자 대응 체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국의 소아 응급실 10곳 중 하나인 이 병원은 지역 내 소아 응급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반경 100km 내 중증 소아 응급환자 진료를 책임져왔다.
병원은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주말이 아닌 평일 휴진을 결정했고 정부가 지정한 달빛어린이병원이 천안에 2곳 있지만 의료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달빛어린이병원은 평일의 경우 오후 11시까지 어린이 환자들을 진료한다.
소아응급실을 지키던 의사들이 떠나가는 것은 일은 고되고 힘든데 보상은 적어서다.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진료가 까다로워 의료 소송 리스크가 큼에도 불구하고 진료비는 낮다. 자칫 의료 사고라도 발생하면 어린이는 기대여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기간)이 길어 배상액도 성인에 비해 훨씬 많다.
필수의료 의사 부족 현상이 고착화하고 가운데 정부가 의사에게 과도한 법적 부담을 지우면서 필수의료 기피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12월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이 개정안은 응급의료기관이 ‘정당한 사유’ 없이 응급환자 수용 요청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수 없도록 해 응급환자 수용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미 치료 결과에 대한 민·형사 소송이 남발되고 있고 응급처치한 의료진에게 법적 책임이 돌아오고 있는 상황인 데다 해당 법안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가 불분명하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한 소아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젊은 의사들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해 사명감을 강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의 법적 책임이 강화되면서 사태가 더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필수의료 분야에 자발적으로 지원해 일할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보호자의 악성 민원이나 의료소송에 시달려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도록 법적 보호장치를 마련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의사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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