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휴폐업땐 3번 이직 가능… “월급 올려달라” 해고 유도 태업
3일 출근하곤 “힘들다” 사라져
외국인 근로자 내년 16만5000명 입국… 열악한 처우개선 등 장기대책 필요
경남 김해시에서 영세 주물업체를 운영하던 김모 씨는 7월 황당한 일을 겪었다. 출근한 지 3일 된 외국인 근로자가 “나는 여기서 일하러 온 게 아니다”라고 말하고, 다음 날 잠적한 것. 김 씨는 “고용계약을 위한 수수료와 기숙사 비용 등의 손해를 본 건 물론이고 당장 일할 사람이 없어 힘들었다”고 했다. 이후 김 씨는 기존 직원도 그만두면서 일손이 부족해 결국 10월에 폐업했다.
정부가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내년에 비전문 외국인 근로자(E-9 비자)를 역대 최대인 16만5000명 들여오기로 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도입 인원이 급격하게 늘어난 반면, 이들을 관리할 대책은 부족하기 때문이다.
● 월급 적고 힘들다고 “관둘래요”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E-9 비자로 들어오는 외국인 근로자는 2020년 5만6000명에서 내년에 16만5000명으로 4년 만에 2.9배로 증가한다.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계는 이를 환영하면서도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기 포천시의 한 중소 금속제조업체를 운영하는 A 씨는 지난달 갑자기 외국인 직원들이 화장실을 하루 15번 넘게 들락거리거나 꾀병을 부려 속앓이를 했다. 외견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직원들이 태업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직원들은 A 씨에게 “최저임금 수준(월 201만 원)인 기본급을 280만 원으로 올려주지 않으면 다른 사업장으로 옮기는 데 동의해 달라”고 요구했다.
E-9 취업자의 경우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바꿀 수 없지만 해고, 휴·폐업, 부당한 처우 등이 있을 때 입국 후 3년 내 3번까지 사업장을 바꿀 수 있다. 한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정보 공유가 활발해지면서 외국인들 사이에 이렇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는 게 매뉴얼처럼 알려진 상황”이라며 “돈을 더 주지 않으면 지인이 일하는 곳에 가고 싶다며 그만두는 사례가 많다”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500곳)의 58.2%에서 입국 후 6개월 내에 외국인 근로자의 계약 해지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 불법 체류 증가…사고 위험 등 보호 대책도 필요
외국인 근로자 도입 확대가 불법 체류자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내 불법 체류자는 2019년 39만281명에서 지난해 41만1270명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E-9 비자로 들어온 사람은 같은 기간 4만6122명에서 5만5171명으로 19.6% 늘었다.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고용부에 따르면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임금체불액은 지난해 1223억 원으로, 매년 1000억 원을 넘기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의 산업재해 사고도 빈번하다. 지난달 30일 경남 함안군의 한 주물공장에서 파키스탄 국적의 50대 근로자가 끊어진 크레인 체인에 맞아 숨졌다. 10월 경북 문경시의 폐기물 재활용 공장에선 30대 스리랑카 근로자가 기계에 끼여 사망했다. 올해 6월까지 전체 산재 사망자(392명)의 10.7%가 외국인이었다.
전문가들은 저숙련 근로자 숫자만 늘리는 단기 처방에서 벗어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외국 인력 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지금처럼 외국 인력 도입 인원과 업종을 급격히 늘리면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외국인 근로자들이 숙련도를 쌓아 국내에서 오래 일하도록 유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하는 등 장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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