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예산 부족 사태로 경찰 등 공무원들의 초과근무 수당 및 출장비 등이 삭감되며 일선에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경”이란 불만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치안 및 민생 공백이 우려된다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해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10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6일 경찰청은 전국 시도경찰청 등에 “불필요한 초과근무를 자제하라”는 내용의 ‘경찰청 근무혁신 강화 계획’을 전달했다. 교대근무를 안 하는 부서의 경우 정시 퇴근 요일을 수요일에서 수·금요일 이틀로 확대하고, 불가피하게 초과근무를 할 경우 부서장 승인을 받도록 하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올 하반기(7∼12월) 흉기 난동 등 강력범죄로 특별치안활동 등이 전개돼 올해 책정된 초과근무 수당 예산(1조3136억 원)의 87.8%를 이미 올 10월까지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일부 시도경찰청은 ‘내근직은 30시간, 외근직은 70시간’ 등 자체적으로 초과근무 수당 제한 기준을 만들고 적용에 나섰다. 여기에 일부 지방청에선 “수사비도 부족하다”며 수사비까지 깎자 “사건은 계속 발생하는데 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이냐” 등 일선의 반발이 거세졌다. 윤희근 청장은 5일 경찰 내부망에 “이유를 불문하고 유감스럽고 죄송하다”는 글을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예산 부족으로 초과근무 수당 등을 제대로 못 받는 건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최근 ‘역대급 세수 펑크’로 지방교부세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올해 23조 원가량 줄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국회나 정부세종청사 등 불가피한 출장은 자비로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에서도 엔데믹으로 출장이 늘면서 출장비가 바닥난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세수 펑크에 공무원 업무비 삭감… “초과수당커녕 자비 출장”
사건 줄잇는데 초과근무 자제령 “12월 수당없이 야근할 판” 한숨 5명 가던 출장, 2명만 가기도 행안부 “지자체에 3조 추가 교부”
경남의 한 경찰서에서 일하는 정보과 경찰은 “상부로부터 한 달에 44시간까지 허용해주던 초과근무를 올 11, 12월은 월 30시간까지만 인정해 주겠다는 말을 들었다”며 “최근에 불만이 이어지자 지구대와 파출소 등만 초과근무 한도를 늘려줬다. 정보과도 연말에 마무리할 일이 몰리는 건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대응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경찰과 공무원 사회 곳곳에서 연말 예산 부족으로 업무 추진에 지장이 크다는 하소연이 터져 나오고 있다. 민생 및 치안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 경찰 “특별치안 활동 여파로 예산 부족”
경찰청은 지난달 6일 각 시도경찰청과 유관기관에 배포한 지침을 통해 파출소·지구대 등에서 교대근무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기본 초과근무’ 수당은 반드시 지급하되, 그 외의 ‘추가 초과근무’ 수당은 최대한 절감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추가 초과근무’ 제한은 지구대와 파출소는 물론이고 수사과와 형사과 등 모든 부서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경찰청은 올해 예상치 못한 치안 수요 급증으로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입장이다. 올 1∼9월 전국 경찰 초과근무 누적 시간은 6910만 시간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794만 시간)보다 1.7%가량 늘었다. 반면 초과수당 예산은 지난해 대비 0.1%밖에 안 늘어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경찰청 지침에 따라 일선에는 초과근무를 줄이란 지시가 하달됐다. 서울의 한 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서 일하는 경찰은 “사건은 쉴 새 없이 접수되는데 초과근무 수당은 신청하지 말라고 한다”며 “12월에는 수당 없이 야근을 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초과근무 수당 제한을 부서별로 달리 두면서 형평성 논란도 일고 있다. 광주의 한 경찰은 “초과근무 시간이 제한을 넘어가면 연가를 대신 신청하라고 하는데 과중한 연말 업무로 연가를 사용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했다. 일부 경찰서에선 올해 강력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수사비 예산도 충분치 않다고 한다. 광주의 한 경찰서에서 일하는 경찰은 “팀당 월 50만, 60만 원에 달하던 수사비가 40만 원으로 줄어 수사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5명 가던 출장 2명만 가기도
초과근무 수당 등을 제대로 신청하지 못하는 건 지자체와 중앙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지자체의 경우 ‘역대급 세수 펑크’의 영향이 크다.
울산시는 올해 1500억 원의 지방교부세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자 예산 절감 차원에서 국내 출장비를 10% 삭감했다. 한 울산시 공무원은 “예전 같으면 4, 5명이 가던 출장을 1, 2명이 가는 상황”이라고 했다.
일부 중앙부처에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면서 전년 대비 출장이 늘어 책정된 출장비가 바닥났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일부 부서의 경우 출장비 중 숙박비만 지급되는 경우도 있고, 출장비 전체를 본인이 부담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중앙부처와 경찰의 경우 예산이 지난해 확정됐기 때문에 세수 펑크와는 관계가 없다”며 “불필요한 초과근무 및 출장 축소는 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오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지자체의 경우 불용액을 전환하거나 다른 사업 지출을 줄이면 된다”고 했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기재부와 협의해 추가로 확보한 세수 약 3조 원을 경비가 모자란 지자체에 연말에 더 교부하며 업무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재원 부경대 행정복지학과 교수는 “중앙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민생 및 치안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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