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 인터뷰
약 3년간 건보심사평가원장 지내고… 산재 전문병원인 태백병원으로 옮겨
환자의 직업병 관련 소견서 작성 등… 산재 환자 치료하는 공공병원 역할
환자 질병-비급여 데이터 활용 등… 산재보험-건강보험 협력 강화 필요
“처음 태백병원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김선민다운 결정’이라는 이야기였어요.”
올해 9월 국내 최초 산재 전문 병원인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로 첫 출근을 한 김선민 직업환경의학과장(59)의 결정은 주변 모두를 놀라게 했다 1989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1990년대 중반 국내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가 처음 배출됐을 때 자격을 취득한 ‘1세대 인재’다. 이후 30년 가까이 의료 정책 분야에서 활동했고, 2020년부터 올해 3월까지 첫 여성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을 지냈다. 그런 그가 다시 ‘현장’을 택했고, 그곳이 태백병원이라는 사실은 큰 화제였다.
7일 서울 영등포구 근로복지공단 서울남부지사에서 만난 김 과장은 “처음 직업환경의학을 공부하던 때와 비교하면 이 분야에 굉장한 발전이 있었다”면서 “그동안 심평원에서 정책 분야를 다루며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으니 적절한 시기에 (직업환경의학과) 다시 잘 만난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직업환경의학이라는 분야는 생소하다. 어떤 일을 하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는 작업장에서 직업병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고, 업무와 관련된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는 일을 한다. 또 어떤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는지 판정한다. 독일 같은 선진국에서 일찍 도입됐는데, 한국에서는 1980, 1990년대 이어진 안타까운 산업재해를 계기로 도입됐다. 1996년 국내에서 첫 전문의가 배출됐다. 나는 그 이듬해 시험에서 합격했다. 지금은 태백병원에서 환자의 직업병 여부를 판정하기 위한 소견서를 쓰고 있다. 내 소견이 산업재해 인정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부담도 크다.”
―태백병원은 어떤 곳인가. 근로복지공단 직영 병원은 일반 병원과 무엇이 다른가.
“태백병원은 1936년 삼척탄좌개발주식회사의 부속병원으로 출발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원래 국내 직업환경의학은 폐에 분진이 쌓이는 진폐증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태백병원이 갖는 상징성은 크다. 이곳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산재 전문이지만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다. 공단은 태백병원을 포함해 10개의 병원과 3개의 의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무래도 산재 치료와 재활은 수익성이 낮아서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단 병원은 보훈병원처럼 수익을 내기보다 민간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산재 환자를 치료하는 공공병원 역할을 맡고 있다.”
―환자를 직접 만나는 현장으로 돌아온 소감은….
“살아있는 느낌이다. 검진 때 말고는 의사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환자를 볼 때마다 혹시 내게 물어보고 싶은 건 없는지 꼭 묻는다. 5초밖에 안 걸리는 질문이지만 덕분에 환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직업병 환자의 이야기에는 그 사람의 인생과 한국 역사가 다 들어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지만 아직 이렇게 깊이 있는 체험을 못 했구나 싶어 반성할 때도 있다.” ―건강보험 전문가에서 산재 전문의가 됐다.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건강보험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1964년에 도입된 산재보험의 역사가 1979년 시행된 건강보험보다 훨씬 깊다. 두 보험이 추구하는 사회보장의 성격과 정신은 같다. 가장 큰 차이점은 건강보험이 원인과 무관하게 질병 치료를 보장해 주는 반면, 산재보험은 사업주가 사고나 질병의 책임을 지는 배상책임의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산재보험은 병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재활을 통해 직장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것까지 보장한다. 따라서 요양급여, 휴업급여, 장해급여, 유족급여, 직업재활급여까지 보장 범위가 매우 넓다. 건강보험은 재활서비스 급여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산재보험이 재활 분야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산재 인정 여부에 따라 보장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환자들이 산재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해야 하는 문제도 생긴다.”
―현장에서 느낀 아쉬움이 있다면….
“우선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이 빅데이터 연계 등의 협력을 강화하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건강보험에서 산재보험이 구축한 산재 환자들의 비급여 부분 데이터를 활용하고, 산재보험도 같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한 환자의 건보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면 서로 큰 도움이 될 거다. 나아가 직업병 판정을 받지 못하면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보장 범위가 크게 낮아지는데, 이런 경우도 보장이 충분해지면 좋겠다. 또 국내 산재병원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 재활 단계의 직업 복귀 지원은 건강보험에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민간병원이 맡기 어렵다. 직업병 치료와 재활은 수익성이 낮고 규모의 경제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공공의료에서 책임져야 한다. 일하다 다친 사람이 쉽게 찾아갈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지역에 산재병원이 필요하다.”
―앞으로 태백병원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우선 직업환경의학 분야에서 신뢰받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리고 환자들 말을 잘 들어주는 의사가 되고 싶다. 지역 주민들이 가벼운 검진을 받더라도 ‘그 의사가 있는 병원에 한번 가보자’며 찾아준다면 영광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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