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 이르면 주내 확정
법원별 투표-후보 추천 폐지 검토
전국 단위로 추천받아 임명 유력
재판 지연 해소-사법부 개혁 착수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사진)이 현행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서 일선 법원 판사들이 투표하는 절차를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법관들의 투표로 후보가 결정되면서 사법행정이 인기 영합주의로 흐르고 재판 지연 문제를 심화시킨다는 지적을 감안한 조치다.
11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조 대법원장은 각 지방법원의 법원장 후보자 추천위원회를 폐지하고 투표 절차를 없애는 내용의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혁안을 검토 중이다. 개혁안은 조 대법원장의 최종 재가 후 이르면 이번 주 내 확정될 전망이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의 대표적인 유산이다. 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하고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 민주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2019년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도입했다. 각 법원 소속 판사들이 투표를 통해 법원장 후보 1∼3명을 추천하면 대법원장이 이 중 한 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 제도가 사실상 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도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에서 “일종의 인기투표가 되고 있고 사법부의 본질적 목적인 충실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다”며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약속했다.
조 대법원장이 유력하게 검토 중인 개혁안은 기존 제도의 폐단으로 지적된 법관 투표를 폐지하는 대신 추천제 골격은 유지하며 전국 단위로 법원장 후보군을 추천받는 방식이다. 추천은 대법원 법원장 인선 자문위원회에 판사들이 직접 후보자를 추천하는 방식 등을 검토하고 있다.
법원장 인선 자문위는 법원 내규에 정해진 기구로 법원행정처장과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추천한 법관 3명,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추천한 법관 2명으로 구성된다. 법원 관계자는 “전국 단위 추천이 모아지면 자문위에서 결격 사유자를 배제하고 대법원장이 전국 법원장을 최종 임명하는 안이 유력하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내년 2월 법원장 인사부터 개혁안을 도입하며 현행 추천제의 폐단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향후 조 대법원장은 추천제를 완전히 폐지할지 여부도 법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장 추천제’, 선거판 조장-재판 지연 초래… 투표 없앤다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사법부 개혁 시동 曺대법원장, 재판 지연 해결 중점… “모든 국민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 법원이 지켜주지 못해 고통 가중”… 법원장들 재판 직접 진행도 추진
조 대법원장이 첫 사법행정 개혁 대상으로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택한 건 스스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강조한 재판 지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제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또 전임자인 김 전 대법원장의 대표적 유산으로 꼽히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혁을 시작으로 사법부 정상화에 본격 착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신속 재판 받을 권리 못 지켜 국민 고통”
현행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2019년 법원 2곳에서 처음 도입된 후 지속적으로 확대돼 올해 12곳에서 추천이 이뤄졌다. 하지만 제도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현행 추천제에 대해 “법원장 후보로 유력한 수석부장판사 등이 투표권을 행사하는 동료 및 후배 판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신속한 재판 진행을 독려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법원 일각에선 “갈수록 법관 인사가 선거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까지 나왔다.
결국 조 대법원장은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투표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경우 일선 법원별로 법원장 후보자를 추천받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후보군을 추리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조 대법원장은 11일 취임사에서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데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며 “국민이 지금 법원에 절실하게 바라는 목소리를 헤아려 볼 때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해 분쟁이 신속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했다.
● 법원장 재판 투입 등도 조만간 추진
재판 지연 문제 해결을 위해 법원장을 재판에 직접 투입하는 방안도 조만간 추진될 전망이다. 조 대법원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취임하면 장기 미제 사건을 집중 관리하겠다”며 “법원장에게 최우선적으로 장기 미제 사건의 재판을 맡기겠다”고 했다.
법원장이 직접 장기 미제 사건을 챙기도록 해 재판 지연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방침을 두고 법원 내부에선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법원장이 직접 장기 미제 재판을 맡아 진행하면 소속 법관들도 자극을 받아 미제 사건 줄이기에 나설 것”이라며 “법관들에게 상당한 동기 부여가 될 걸로 본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조만간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 도입과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 도입 등도 공론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조건부 구속영장 제도는 피의자에게 영장을 발부하되 거주지 제한 등의 조건을 달아 석방하고, 조건을 어길 경우에만 신병을 구속하는 것이다.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은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면 판사가 피의자 등 사건 관계인을 심문한 뒤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다만 두 제도 모두 검찰 등 수사기관이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하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논의가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있다.
조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개혁은 15일 예정된 전국법원장회의에서도 화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회의에는 재판 지연 문제 등이 공식 안건으로 올라와 있다. 법원 관계자는 “조 대법원장이 처음 주재하는 회의인 만큼 법원장 후보 추천제 개혁안 등 주요 현안이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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