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서 9년째 낭독 봉사, 강선주 씨
“힘든 시기에 성우 준비와 낭독 봉사 병행하며 극복…”
평소 목 관리와 낭독 연습 철저히 하며 오디오 북 녹음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니/ 별들이 마을에서보다/ 더 뚜렷하게 반짝이고/.....”
또박또박한 발음, 맑은 목소리. 낭독봉사자 강선주 씨(45)가 녹음기 마이크 앞에서 편안한 음성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의 목소리는 누군가의 눈이 되고 세상이 된다.
강 씨는 점자도서관 녹음실이나 집에서 하루에 1~2시간씩 거의 매일 책을 낭독해 녹음한다. 이후 녹음된 파일은 소리 도서와 매거진 등으로 제작된 후 시각장애인들에게 전달된다. 낭독 봉사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책의 내용을 대신 읽어주는 봉사활동이자 재능기부다. 한 권의 책을 녹음하는데 보통 3개월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봉사자들의 책임감과 정성이 필요하다.
“성우 꿈에 도전하며 낭독 봉사 시작…”
강 씨는 ‘팔색조 성우’라 불릴 정도로 낭독 봉사자들 사이에서 호평이 자자하다. 성우가 꿈이었던 그는 방송사 성우 공채 시험에 도전해왔던 경력 덕에 발성과 호흡 등이 훈련돼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잠시 방황했었던 그는 ‘성우’ 시험에 도전했고, 낭독 봉사에 몰두하면서 힘든 시기를 딛고 새롭게 일어설 수 있었다.
대학생 때도 참여했지만 그가 본격적으로 낭독 봉사를 시작한 것은 2015년도부터다. 경기도시각장애인연합회에 올라온 공고를 보고 지원해 오디션을 통과했다. 과거 미술을 전공했던 그는 미술학원 교사를 하면서 골프장 캐디로도 일했고 사회복지사 2급 등의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 씨는 방송 공채에서 500:1이 넘는 경쟁률을 뚫지 못해 전문 성우는 되지 못했다. 그는 기자에게 “꿈을 못 이뤘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름대로 꿈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했다. 봉사를 하면서 큰 행복을 느꼈고 자신의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등불이 되는 봉사활동이 강 씨 생활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목소리를 필요로 할 때 가장 즐거워”
사실 낭독 봉사는 몇 시간 동안 책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는 점에서 쉬운 작업은 아니다. 특히 소설을 녹음하는 것이 다소 힘든 일이라고 강 씨는 밝혔다. 등장인물이 많고 남성 목소리를 낼 때마다 목소리 톤을 바꿔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강 씨는 책 한 구절에도 열과 성을 다해 준비하고, 모니터링과 여러 번의 음성 편집을 거치기도 한다.
특히 래퍼를 연기해야 하는 소설의 한 장면이 있었다. 생생함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었지만 랩을 해본 적이 없어 강 씨는 지인 아들에게 랩을 배워서 녹음을 완성했다.
이처럼 그가 낭독에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간절한 이유가 있을까. 그는 단지 “누군가 내 목소리를 필요로 해서 찾아줄 때 정말 즐겁다”고 전했다. 최근부터 강 씨는 점자의 날, 흰 지팡이의 날 등 시각장애인 관련 행사에서 사회자를 맡아달라는 요청도 받기 시작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로부터 고마움 메시지 받을 때 감사해”
강 씨는 낭독 봉사를 위해 평소 목 관리와 낭독 연습을 철저히 한다. 녹음 전날에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자제하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다. 녹음기 마이크를 구매해 집에서 재택 녹음을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다. 직장을 그만두고 봉사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했다.
또 세미나에서 교육받았던 내용을 토대로 발성 연습도 틈틈이 한다. 이 같은 강 씨의 열정이 시각장애인들에게도 전해진 걸까. 평가회가 끝난 뒤 강 씨는 시각장애인분들로부터 감사 메시지를 전달받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즐거워서 했던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을 때 그저 감사함을 느꼈다”라며 “목소리를 잃지 않는 이상 평생 낭독 봉사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 대다수가 후천적 장애인, 배려 더 많아지길”
강 씨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낭독 봉사를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아쉬움이 남는 부분도 있다. 그가 완성한 자료들에 대한 피드백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강 씨는 “최대한 시각장애인들에게 잘 전달되게끔 낭독하고 있지만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더 좋을 것 같다”라며 “음성을 들으며 그분들이 어떤 점이 불편한지는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
강 씨는 봉사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들의 기본권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음료 등 식품에 점자가 표기돼 시각장애인들도 제품 선택의 자유를 보장받았으면 하는 소망을 밝혔다. 강 씨는 “시각장애인에게 먹거리에 대한 점자 표시가 너무 미비하다”라며 “예를 들어 음료수도 종류와 무관하게 ‘음료’로만 표기된다. 유통기한 혹은 성분 표시는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강 씨는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대다수가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이다. 나 또는 주변인들이 불시에 사고를 당할 수도 있는데 이들이 취약한 환경에 처한 부분들은 더 많이 바라봐줘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끝으로 강 씨는 “1나노미터의 기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한다면 각박한 세상에 조금이나마 활력이 더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따뜻함을 잊지 않아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작은 것부터 노력하고 나 한 명이라도 행동하면 언젠가는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고 믿는다”라고 덧붙였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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