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운전’에 여동생 잃은 오빠
“차들이 달려들것 같아 거리 못다녀
모친, 딸전화 못받았다며 매일 눈물”
20대 가해자, 오늘 1심 결심공판
“갑자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떡하니….”
17일 오후 3시, 경북 성주군의 한 봉안당.
배진환 씨(31)는 여동생 유골함과 사진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한참 오열하던 배 씨는 “지금이라도 동생이 웃는 모습으로 나타날 것만 같다”며 “오빠로서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만큼, 이제 할 일은 피의자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지켜보는 것”이라고 다짐했다.
성인 손바닥 크기의 유골함에 잠든 배 씨의 여동생(27)은 올 8월 2일 오후 8시 10분경 퇴근길에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인도를 걷다가 갑자기 돌진한 롤스로이스 차량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다가 지난달 25일 사망했다.
● 한순간에 일상 무너진 가족들
배 씨는 고인을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착한 동생’으로 기억했다. 대학 시절 늘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서울에 취직해 올라올 때도 부모님이나 오빠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모은 돈으로 자취방을 얻었다.
생일, 결혼기념일 등이 돌아오면 부모님이나 오빠 선물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배 씨는 “동생은 부모님이나 저한테 한 번도 손을 벌린 적이 없다”며 “생활비를 아껴서 몸이 안 좋은 부모님께 드릴 비타민 선물까지 마련했다”고 돌이켰다. 또 “동생이 조금만 덜 성실해 몇 분만 일찍 퇴근했다면 여전히 살아 있지 않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고도 했다.
배 씨 가족의 일상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배 씨는 “회사원이었던 아버지는 올 7월 퇴직하시고 어머니와 여유로운 노후를 계획하고 있었다. 동생까지 원하던 대로 서울에 취업해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던 때 사고가 났다”고 말했다.
동생은 사고 사흘 만인 올 8월 5일 뇌사 판정을 받았다.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어 4개월 가까이 연명치료를 이어갔지만 결국 지난달 25일 사망 판정이 내려졌다.
유족들은 고통 속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빠는 사고 후 거리를 걸을 때마다 지나던 차량이 돌진할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온다고 했다. 어머니는 식사를 제대로 못 해 체중이 10kg 가까이 빠졌다. 배 씨는 “어머니는 사고 당일 전화를 못 받아 딸의 마지막 목소리를 못 들었다며 매일 흐느낀다. 아버지는 ‘서울에 일하러 간다고 했을 때 말렸어야 했다’고 자책한다”고 했다.
● “마약류 무분별한 처방 더이상 없어야”
배 씨는 언론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일명 ‘롤스로이스남’으로 불리는 가해자 신모 씨(28)는 사고 후 검사에서 케타민과 미다졸람, 프로포폴 등 7종의 마약류 성분이 검출됐다. 신 씨는 “피부과 치료를 위해 사용했던 마취제 때문”이라고 해명했는데 이를 두고 그가 ‘단골 병원’에서 마약류를 상습적으로 투약해 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은 ‘단골 병원’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며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배 씨는 “사고 당일 횡단보도가 아니라 인도에서 차에 치었다는 말을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며 “이후 운전자가 마약류를 투약한 상태였다는 말을 듣고서야 사고를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했다. 또 “동생 같은 피해자가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의사들이 더 이상 마약류를 무분별하게 처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신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도주치사,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구속돼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부모님과 대구에 거주하는 배 씨는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리는 신 씨 재판에 시간이 되는 한 출석하고 있다. 동생을 위해서라도 가해자가 합당한 처벌을 받을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생각에서다. 20일 1심 결심공판에도 참석한다.
배 씨는 “주변에선 10년 안팎의 형을 예상하는데 그걸로는 안 된다”며 “사고를 낸 다음 구조도 안 하고 도주까지 한 점을 감안해 최고 수위의 형량이 나오길 바란다. 그래야 비슷한 피해자가 다시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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