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집은 복판 가운데 있기 때문에 어려운 사람, 아픈 사람이 차에서 내리고 하는 게 사방에서 다 보이는데 일일이 모두 다 보살피지 못해서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경남 의령군 유곡면에서 ‘봉사왕’으로 통했던 공도연 할머니(82)는 시신을 기증하며 마지막까지 봉사의 삶을 실천했다.
20일 의령군은 공도연 할머니가 지난 9월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창원에 사는 자식들이 장례를 치러 공도연 할머니의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공 할머니의 봉사 인생은 ‘반백 살’ 넘도록 지속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모든 정부로부터 표창·훈장만 60번 넘게 받았다. 2020년에는 사회공헌과 모범 노인 자격으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기도 했다.
가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할머니 시신을 경상국립대학교 의대로 보내 해부학 연구를 위한 실습용으로 기증했다. 지난해 별세한 남편 고(故) 박효진 할아버지 시신 역시 같은 곳에 기증했다.
17세에 천막집에서 시집살이를 시작한 공 할머니는 끼니 걱정을 해야 할 정도로 가난에 허덕였지만 부지런히 일했다.
이후 형편이 나아져 주변에서 ‘부잣집’ 소리도 듣기 시작한 30대에는 본격적인 사회활동과 이웃돕기 봉사에 나섰다.
1970년대 초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마을 주민들을 독려해 농한기 소득 증대 사업 등으로 마을 수입을 늘려갔고, 어려운 이웃을 도왔다. 마을 주민들은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으로 1976년 당시 송산국민학교에 ‘사랑의 어머니’ 동상을 건립했다.
1985년에는 주민들이 의료시설이 없어 불편을 겪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대지 225㎡를 구매, 의령군에 기탁해 송산보건진료소 개설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50년 세월 동안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 지원, 불우이웃 돕기 성금 기부, 각종 단체에 쌀 등 물품 기탁 등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본인의 돈을 내놓았다.
부랑자나 거지를 길에서 만나고, 이웃에 누군가 궁핍한 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쌈짓돈과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부리나케 챙겨 주변 사람을 도왔다.
새마을부녀회장 등 사회단체장을 다수 맡아 동네 여성들을 모아 한글을 깨치게 하고, 자전거 타기를 가르친 일화도 지역에서 유명하다.
할머니의 봉사활동은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계속됐다. 80세 되던 해, 35kg의 몸으로 리어카를 끌면서 나물을 팔고, 고물을 주어 번 돈으로 기부를 했다.
공 할머니는 1999년부터 봉사일기도 빼곡히 써 내려왔다. 할머니는 일기장에 “가난해 보지 못한 사람은 가난의 아픔과 시련을 알지 못할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처럼 잘살아 보겠다는 강한 신념이 있다면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없는 자의 비애감을 내 이웃들은 느끼지 않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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